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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노 마이그르(위). 레소 플뤼가 지원하는 노인 사회복지서비스 운영 사회적 기업 ‘사다페’의 사원이 노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다페 제공 (아래) |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오피스타운 근처의 사무실에서 만난 아르노 마이그르(46)는 공식 업무 시간이 끝났는 데도 걸려오는 전화 받기에 바빴다. 그가 대표로 있는 ‘레소 플뤼(Reseau-plus)’와 협력관계에 있는 업체들의 문의 전화였다. 귀찮거나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목소리와 몸짓에 활력이 넘쳤다. 오늘도 고개 숙인 채 쳇바퀴 같은 일상에 허덕이는 평범한 생활인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한 때는 마이그르도 오로지 사기업의 이익(private profits)을 만족시키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 대학 졸업 후 세계 정상의 정보·기술(IT) 기업 IBM에서 전산 전문가로 일할 때의 얘기다. 그러나 그의 현재 삶은 180도 바뀌었다. 돈을 벌면서도 취약계층과 지역사회에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키워내 ‘사회적 이익(social benefits)’을 극대화시키는 게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1995년 IBM을 그만둔 마이그르는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한 ‘돌보미 서비스’를 주축으로 한 대인 서비스 전문 기업 ‘솔리다리테 앙테프리스(Solidarite Entreprise·레소 플뤼 전신)’를 세웠다. 고령화의 심각성에 주목한 그는 먼저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재가(在家)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돌보미가 직접 집을 방문해 노인들의 이동과 목욕, 식사를 돕고 말동무도 되어준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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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 플뤼가 지원하는 보육 사회적 기업 ‘라파트데레브’의 사원이 아이를 안아 우유를 먹이고 있다. |라파트데레브 제공 |
금전 지원에 치중된 정부 복지정책보다 세밀하게 수요자의 요구를 담아내고,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이 외면하는 저소득층과 중간 계층 노인들을 겨냥해 복지 서비스 양극화의 위험을 줄여보자는 것이 애초 취지였다.
변화가 조금씩 나타났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의 생활밀착형 사회복지 서비스를 찾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노인 복지 문제도 개선의 기미를 보였다. 사업이 성공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다른 창업 희망자에게 나눠주는 일에 나섰다. IBM에서 쌓은 ‘철저하게 현장에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경영 노하우의 중요성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 현대사회의 생활 패턴 변화와 복지국가 위기 등으로 갈수록 수요가 높아지는 대인 서비스 시장에서 더 많은 이들이 자신처럼 사회적 가치를 찾아 공헌하기를 바라서다. 자신의 모델을 바탕으로라면 노인 문제뿐 아니라 보육, 장애인 문제 등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질 좋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사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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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르는 2001년부터 레소 플뤼를 통해 대인 서비스 분야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을 교육시키고 각종 아이디어와 경영 기술을 제공해오고 있다. 창업의 관건인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 대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창업자들을 대표해서 금융기관을 설득하는 ‘맏 언니’ 목소리도 낸다. 2005년 대인 서비스 업체에 대해 고용세 인하 등 지원책을 마련한 ‘볼루 계획(또는 사회결속법)’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 중인 대인 서비스 부문에서 정부 부처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코디네이터 역할도 마이그르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프랑스어로 ‘네트워크 더하기’라는 뜻의 회사 이름처럼 다양한 대인 서비스 업체들간의 지역별, 분야별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도 열심이다. ‘스승 기업’을 선정해 창업 단계의 기업과 1 대 1 ‘멘토링’을 제공하는 것이 한 예다. 또한 3년 안에 일정 수준의 순이익을 내지 못하고 최소 10명의 직원을 고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사업 중지를 경고하는 등 엄격한 ‘품질’ 관리를 한다. 사람과 밀착된 대인 서비스 분야일수록 신뢰성과 품질이 더욱 중요하다는 경영철학 때문이다.
그는 양적인 성공보다 질적인 도약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취약 계층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늘어나면 일자리 창출까지 함께 이뤄지면서 사회통합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IBM 때보다 수입이 3분의 1로 줄었지만 행복은 세 배가 되었다는 그는 “한 세계에서 와서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은 둘 사이의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한다. 서로 다른 경험들을 합치면 폭넓은 관점으로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파리 시의 자전거 대여사업인 ‘벨리브(Velibe)’에 참여한다는 마이그르는 식사를 마치고 자전거가 주차된 곳으로 향했다. 그가 밟아 내달리는 페달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 레소 플뤼
대인 서비스 전문 사회적기업 레소 플뤼는 2001년 유럽사회기금과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일부 받아 세워졌다. 보육과 노인·장애인 돌봄, 주택이나 정원 관리, 음식과 물 배달 등 다양한 대인 서비스 분야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200개가 넘는 기업이 레소 플뤼 네트워크를 통해 생겨났다. 지금도 매달 프랑스 전역에서 3~4개 업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파리|김유진기자 actvoice@kyunghyang.com〉
[‘사회적 기업’이 희망이다]佛 “시장경제 회의 느껴 새가치 찾는 직장인 늘어” |
입력: 2007년 10월 14일 17: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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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사회적 기업가라는 용어가 널리 확산된 것은 2000년 무렵이지만, 그 기원은 19세기 말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에서 태동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의 발전사와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는 시장 효율과 최대 이윤 추구를 중시하는 고전주의 학파에 맞서 프랑스 경제학자 레옹 왈라스 등이 주창한 개념으로, 적극적인 사회 재분배와 취약계층 고려를 중시한다. 유럽의 노동조합, 협동조합운동의 토대를 놓은 사회적 경제에 내포된 이런 연대의 정신은 오늘날 사회적 기업가들의 활동에 공통적으로 내포된 가치다.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가층도 이제는 세대 변화를 겪고 있다.
사회재통합기업연합회(CNEI) 장 마리 위그 사무총장(46)은 “사회적 기업가는 크게 두 부류”라며 “나이가 좀 많은 이들은 대개 사회복지사 출신이고, 비교적 젊은 층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시작한 이들”이라고 말했다. 위그 사무총장 자신도 다국적 농업회사 직원에서 1998년 사회재통합기업을 설립하면서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한 케이스다.
1970년대 후반 경제 위기가 닥친 프랑스에서는 실업자 등 사회배제층을 위한 자선활동을 하던 사회복지사나 사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좀더 실질적으로 자활을 지원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대두됐다. 이에 정부의 적극적인 장려에 힘입어 직업훈련과 노동시장 통합에 주력하는 사회재통합기업을 세우는 활동가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사회적 기업 부문에 뛰어드는 경우도 늘고 있다. 30대 초반의 마티유 그로세는 사회적 기업가 준비생이다. CNEI의 미디어 담당자로서, 언젠가 세울 자신의 사회재통합기업의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는 그는 “이 분야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가진 사회적 의지와 비전이 참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 지원 민간조직 AVISE의 파트릭 제즈 사무총장은 “과거 대기업, 특히 다국적 회사를 선호하던 젊은이들 중 승자독식 신자유주의 경제에 환멸을 느끼면서 인간 존중의 원리에 따라 이익을 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이들이 사회적 기업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리|김유진기자 actvoice@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