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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칼럼

신자유주의의 종말은 어디인가

by changebuilder 2008. 10. 27.

[투데이 프리즘] 신자유주의의 종말은 어디인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사태의 출발은 서브프라임이었지만 첨단 금융공학으로 각광받던 투자은행의 파산으로 결국 구제금융이라는 규제의 우산을 뒤집어 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수출 중소기업들이 가입한 통화옵션 KIKO와 환율 상승 때문에 실물경제 파급효과를 걱정하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도 무분별한 시장의 규제완화가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며 구제금융에 동조하고 있는 분위기다. 
 

   
▲ 나주대 박상하교수
일련의 이런 현상과 조치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선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아담스미스의 자유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케인스 주의를 불러왔듯이 지금의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려하고 있다. 마침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광우병 촛불 시위 때 한국을 지지했던 프린스턴대학의 폴 크루구먼이 선정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부시의 저격수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케인스주의자이다.

이번 노벨상의 의미를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시장만능의 경제패러다임은 더 이상 경제학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복지국가와 국가개입주의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것으로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자본주의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옷을 바꿔 입을 때마다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보다 폭넓은 이해를 위해 격변기를 살아야 했던 역사적 과정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삶의 풍요와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영국에서 발달하였다. 중세 봉건사회를 무너지게 만든 산업혁명과 기계화는 영주들에게는 자본축적과 부를 안겨주었지만 농노들은 거지와 유랑민으로 전락되었다. 영국의 구빈법은 오늘날 공공부조의 원조격으로 교과서에 등장하지만 피의 악법이었다. 1776년 이후 아담스미스 경제사상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시장을 중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대변해 주었다.

이때는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기 때문에 수요를 걱정하지 않는 세이법칙이 작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사조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설 땅을 잃고 만다. 이때의 실업과 파산으로 빵을 타기위해 줄지어선 미국인의 행렬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러한  미국인의 고통과 경제난국을 타개하는데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학자가 케인즈이고 루스벨트는 그의 이론을 실천에 옮겨 뉴딜정책으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 당시 케인즈라는 경제학자는 죽어가는 자본주의를 살렸다는 칭송을 받았다. 시장보다는 국가개입에 의한 경제성장으로 자본주의 황금기를 맞이했고 복지국가시대를 열었다는 공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케인즈 사상도 1970년대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으로 또 다른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었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였다.

과거 자유주의 화신으로 새롭게 등장했다하여 新자를 붙여 옷을 바꿔 입었다. 이는 경쟁만이 아름다운 것이라 여겼고 승자독식의 새판을 짜기 시작했다. 그래서 약소국은 서러운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신자유주의가 30여년동안 풍미하다가 좌초위기에 몰렸기 때문에 지금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 신자유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였다. 그래서 열심히 따라했다. 어떻게 보면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경제사조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조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하는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신자유주의는 하이에크가 씨를 뿌리고, 영국의 대처수상이 가꿨으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계승하여 세계질서를 재편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는 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 작은 정부, 자유 시장경제 중시,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요약된다. 최근 교육, 의료, 방송에서 감세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의 결과는 양극화였다. 미국도 부시행정부의 시장만능주의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근본 얼굴은 경쟁과 효율이다. 신자유주의의 우등생인 미국마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려고 한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어쩌면 평등과 배려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무시한 경고처럼 들린다.     

나주대학교 박 상 하 교수(parksh@naju.ac.kr)

 

나주투데이 minjuk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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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4일 (3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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