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시대)<2부>⑤13개월의 함정 |
외환위기후
퇴직금 중간 정산제 확산 노후 자금 줄줄이 새나가 DC형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게 유리 |
입력 : 2005.11.04 12:05 |
직장생활 초기엔 회사생활이나 연봉이 꽤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퇴직금이 연봉에 녹아있어 지갑이 두둑한 게 맘에 들었다. 그 돈은 집안의 대소사가 일을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고 시골에 살고 계신 부모님 용돈도 아쉽지 않게 드릴 수 있었다. 마을회관에서는 `효자`라는 칭찬이 자자했다. 친구들에게도 한턱씩 자주 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결제는 거의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어깨가 축 쳐졌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건만 벌써부터 퇴직 걱정이다. 최근엔 40대 초반인 선배가 회사를 그만뒀다. 주변에서 40대에 퇴직했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근 10년 동안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노후 준비를 해야할텐데 하는 강박감만 더해간다. 이제야 `퇴직금 소중한지` 알았다는 그는 가끔 `중간정산제의 덫`에 빠진 기분마저 든다고 한다. ◇ 중간 정산..줄줄 새는 퇴직금 노후자금으로 써야할 퇴직금이 중간중간 생활자금으로 사라져버리고 있다. 매년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으면서 요긴하게 사용하던 근로자는 은퇴 이후 생활설계마저 막막할 뿐이다. 결국 지난 수십년간 뼈 빠지게 일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씨와 같이 매년 중간정산제를 받지 않았어도 대부분 근로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 두번씩 중간정산을 받았다. 부채를 줄이려는 반강제적인 회사정책에 떠밀려 받은 것이다. 27세 입사한 근로자가 15년차에 중간정산을 받을 경우와 받지 않는 경우 종신까지 연금 수령액의 차이는 크다. 삼성생명 분석에 따르면 55세 은퇴한다고 했을 때, 중간정산을 받은 근로자는 종신까지 매월 79만원밖에 받지 못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17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같은 직장 내에서도 중간정산 수령 여부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생겨나는 것이다. ◇ 외환위기의 산물 중간정산제는 외환위기가 가져온 산물이다. 기업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지난 97년, 중간정산제가 도입됐다.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이었다. 퇴직금 부채가 자본금을 넘어서며 기업의 생존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연봉제와 함께 중간정산제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98년에는 전체 25.5%가 중간정산제를 도입했고, 99년에는 32.4%로 늘어났다. 2001년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퇴직금 중간정산제를 도입한 기업은 83%에 이르고 이 가운데 29%는 매년 정기적으로 퇴직금을 중간정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통계치는 없지만 분명 당시보다 더욱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어려운 회사 사정을 감안해 근로자들은 이 제도의 확산을 묵과했다. 오히려 직장 이동이 잦아지고 퇴직금의 수급권이 크게 위협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줄줄이 도산하는 기업들을 보며 한시라도 빨리 찾아놓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회사 도산으로 퇴직금 한 푼 쥐지 못한 경우가 숱하게 많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퇴직금은 받으면 다행이라는 심리가 워낙 강해, 퇴직금 본연의 기능인 노후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당시 벤처기업에 다녔던 안모(43)씨는 "그 때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노후대비 차원에서 퇴직금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였다"고 술회했다. ◇ DC형 퇴직연금으로 전환 검토해볼 만 미국에서는 중간정산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세금 혜택이 없고, 오히려 큰 위약금을 물어야하기 때문에 거의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중간정산을 방지하고 근로자의 노후 대비를 유도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2000년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퇴직 시기도 빨라지는데다 노년은 더욱 길어지면서 근로자들의 입장도 달라지고 있다. 이젠 근로자들 사이에서 중간정산을 최대한 받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 적극적으로 중간정산을 유도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조모 대리는 "회사에서 퇴직금 누진제 부담을 덜기 위해 중간정산을 유도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직원들이 참여하길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매년 중간정산을 실시하는 기업에서는 불만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청년실업과 퇴직압박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도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을 도입한다면 매년 퇴직금 중간정산해주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근로자가 정작 돈이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중간정산제의 장점은 퇴직연금도 가지고 있다. 무주택 가입자의 주택구입, 가입자 또는 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장기요양, 천재·사변일 경우에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에 인출할 수 있다. 중도인출의 요건이 까다롭지만, 거꾸로 이런 `큰일` 이외에는 쓸 돈을 최대한 아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건욱 머서HR 수석 컨설턴트는 "중간정산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들이 DC형으로 전환했을 때 전환비용도 적고 부담도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
이데일리 조진형 shincho@edail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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