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들은 취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들은 아예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쉬었음’ 청년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결혼과 출산은 포기 수준에 이르렀다. 자산 격차는 확대되고 노동시장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기성세대는 여전히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하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좌절은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인내심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선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에 있다. 청년들은 지금 경기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경제학의 전제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은 성장률과 생산성, 효율성과 수익성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원래 출발점은 달랐다. 경제학의 역사에는 사실 두 개의 길이 존재했다. 하나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애덤 스미스의 전통이다. 스미스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시킨다고 보았다. 시장은 수많은 개인의 선택이 모이는 공간이며 경쟁과 교환을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고 믿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 사상은 강력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유럽에는 전혀 다른 주류경제학 전통이 유행하고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학파의 안토니오 제노베시가 정립한 ‘시민경제학’이다. 제노베시는 인간을 이익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시민으로 보았다. 시장 역시 단순한 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신뢰와 협력을 통해 공동의 번영을 만드는 장소였으며 경제의 목적은 부의 축적이 아닌 ‘공공행복’에 있다고 보았다. 18세기 후반까지 두 전통은 공존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한계효용학파의 등장으로 경제학은 인간의 선택과 욕망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훌륭한 도구로 변모했다. 이를 계기로 애덤 스미스의 시장 중심 사상은 승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시장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개인의 욕망을 수학적 모델로 설명하면서 경제학은 과학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시민경제학이 강조했던 신뢰, 호혜성, 공동체, 공공선과 같은 가치들은 측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경제학은 측정 가능한 것에 집중했고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은 점차 학문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 결과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이라는 원래의 질문보다 성장과 효율성, 생산성과 이윤이라는 목표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의 성공과 자본주의 경제의 눈부신 성장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정당화했다. 시민경제학은 도덕철학의 영역으로 밀려났고 시장경제학은 현대 경제학의 표준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결과는 어떠한가. GDP와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사회적 신뢰는 낮아졌고 공동체는 약화되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심화되는 양극화는 성장 중심 경제학이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노동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 없는 노동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높은 연봉과 대기업 간판만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단순한 소득보다 사회적 가치와 의미,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 시민경제학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대안적 상상력이 될 수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제안한 ‘시민노동’ 개념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는 임금을 받는 노동만을 일자리로 인정하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넘어 돌봄과 환경보호, 지역사회 활동, 공익적 서비스와 같은 공동체 유지 활동 역시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노동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시민경제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외면 받았던 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ESG와 사회적 가치 측정이나 사회적 자본 연구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공동체 신뢰와 사회적 성과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과 제도의 발전이 시민경제학의 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국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청년을 오직 시장에 공급할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활동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공동체 가치를 창출하는 시민노동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새로운 정책대안도 필요하다. 청년들이 경기장을 떠나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떠난 것은 낡은 규칙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일자리보다 어떤 일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는 새로운 경기장을 만들려면 성장의 숫자를 넘어 공공선을 다시 경제의 중심에 갖다 놓아야 한다.
2026.07.01 광주일보 은펜칼럼
/박상하 parksh17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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