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업데이트 2026.01.27 11:29

박상하(사회경제연구원장)
광주전남 통합을 전제로 한 논의들이 많다. 통합의 핵심은 지방분권과 자치의 시대로 가야한다는 것이 대원칙이다. 이러한 방향성 아래 사회연대경제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 선진국들의 공통된 성공요인은 국가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서 출발한 실업과 농촌 붕괴, 이주민 통합과 같은 지역 문제 해결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자본보다 사람, 이윤보다 목적, 소유보다 참여, 성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정체성 확립이 뚜렷했으며, 지방정부가 중심이며 중앙은 보조자였다는 점이다. 또한 유럽 사회연대경제는 재정 기반이 정부 보조금이 아닌 조합원·회원·이용자가 핵심 재원이며 정치와는 ‘거리두기’를 통해 소유구조와 의사결정 및 분배 자체가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확립하였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사회적경제 역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의 수는 크게 늘었고, 각종 지원센터와 중간조직도 전국 곳곳에 자리 잡았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사회적경제는 이미 하나의 정책 분야로 확고히 자리 잡은 듯 보인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조직은 늘었지만 지속가능성은 약해졌고,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오히려 깊어졌다. 이 간극의 원인은 비교적 분명하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정책은 오랫동안 중앙정부 주도의 양적 성장 전략에 기반해 왔다. 정책적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조직 수, 고용 인원, 인증 숫자 등 계량 지표로 측정되었고, 정책의 초점은 ‘얼마나 빠르게 확산시키는가’에 맞춰졌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경제는 지역과 공동체의 필요에서 자라나는 경제 방식이 아니라, 중앙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이러한 구조는 사회적경제를 점차 정부 의존적으로 만들었다. 인증과 국가 보조금, 평가가 생존의 전제가 되면서 많은 조직들이 시장과 시민보다는 행정체계를 더 의식하게 되었다. 정권과 정책 기조가 바뀔 때마다 사회적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개별 조직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정책 설계 자체의 구조적 한계다. 특히 지역에서는 그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났다. 중앙에서 설계된 기준과 사업이 지역에 일괄 적용되면서, 각 지역이 가진 산업 구조와 생활경제의 맥락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지방정부와 현장은 정책을 기획하는 주체가 아니라 집행하는 역할에 머물렀고, 사회적경제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라기보다 중앙정부 정책의 전달 체계로 작동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논의되고 있는 광주·전남 통합특별시는 사회적경제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통합특별시가 단순히 행정 효율이나 재정 특례에 초점을 맞춘다면 기존 구조를 반복하는 데 그칠 것이다. 그러나 정책 권한과 설계의 중심을 지역으로 옮기는 진정한 분권 모델로 설계된다면, 사회적경제 역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우선 사회적경제를 ‘지원해야 할 특정 기업군’이 아니라, 지역 경제를 운영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별 조직을 늘리는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안에서 생산·유통·금융·소비가 연계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보조금 중심의 단기 사업이 아니라, 지역 내부 수요와 거래를 기반으로 한 생활경제 전략에 가깝다. 또한 사회적경제의 기준과 평가는 중앙정부나 외부 ESG 체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경제의 정체성은 단순한 사회공헌 성과가 아니라, 소유 구조와 의사결정 방식, 잉여가 어떻게 분배되는가에 있다. 이러한 기준은 지역의 합의와 민간의 자율적 규범을 통해 형성될 때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경제를 정치로부터 일정하게 분리하는 일이다. 정책적 협력은 필요하지만, 사회적경제가 특정 정권이나 정치 논리에 종속될수록 그 기반은 취약해진다. 지방정부의 역할 역시 관리와 통제가 아니라, 자율적 생태계를 보호하고 촉진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광주·전남 통합특별시는 단순한 행정 통합을 넘어, 성장 중심 개발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경제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 더 크고 빠른 성장이 아니라,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리고 지역에 뿌리내린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경제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전제는 분명하다.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중앙정부 주도의 사회적경제 20년은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사회적경제는 위에서 설계될수록 취약해지고, 아래에서 축적될수록 강해진다는 점이다. 광주·전남 통합특별시가 이 교훈을 제도와 정책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2026.1.27 전남일보 오피니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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