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광주에서 시민사회가 마련한 촛불정국과 개헌에 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2016년을 정리하는 회고와 전망의 시간이었다. 무거웠지만 끝날 때는 모두가 희망을 보는 듯했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헌재의 판단은 7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래서 개헌도 준비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물론 탄핵에 집중하자는 입장도 강한게 사실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행태이다. 벌써부터 유불리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합집산이 요동친다. 헌재의 탄핵심판이 어떤 결론이 나든 역사 앞에 떳떳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권은 무능하고 국가의 품격은 말이 아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비아냥속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대통령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다시금 잊혀진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우린 엄청난 일을 당하고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어버린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역사적인 치욕적 사건이나 전쟁 같은 아픈 기억은 더욱 그렇다. 우리 국민에게 일제치하는 치욕적인 일이다. 아마도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역사는 부끄러운 사실로 기억할 것이다. 아픈 기억도 역사이다. 아픔을 교훈으로 삼는 나라는 희망이 있다.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은 미래를 자랑스럽게 만든다. 독일 총리가 무릎 꿇고 역사 앞에 사죄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동안 우리가 일본에 대해 역사문제를 두고 핏대를 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박근혜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과거를 미화하고 싶은 충동과 압력은 늘 준비되어 있었다. 일제청산을 못한 과거 때문에 겪어야하는 고통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우리사회를 이념과 진영논리의 헤게모니 속에 빠뜨린 것은 우리의 속살이기도 하다.
친일파가 해방이 되어도 처벌받기는커녕 독립 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았다. 이건 두고두고 아픔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 한상범 교수는 여명의 눈동자에 나오는 스즈끼 형사를 빗대어 잘 설명해준다. 해방이 되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모두 흡수하고 그들은 건국의 공로자로 둔갑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호위호식하며 부를 축적하여 스스로 보수적 기득권을 창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4.19혁명으로 궁지에 몰린다. 다시 친일파에게 살길을 열어준 것은 5.16군사 쿠데타였다. 그 후부터 군사독재가 이어지는 동안 더욱 강고해진 보수기득권은 날로 성장하였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소위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보수권력이 지배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런 보수권력이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그렇지만 대안세력이나 정치인의 새로운 리더십은 없다. 권력을 잡는 것에만 몰두 하다 보니 개헌은 지금 물타기라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에서 터져 나온다. 진보 세력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온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금남로에 촛불을 든 고등학생들의 발언은 어른들이 반성만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정유라가 말했던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것은 보수 기득권의 단면을 살짝 드러낸 것이다. 얼마나 견고한지 이제는 역사적 사실도 바꿀 기세다. 건국절 논란을 보면 그들의 속내는 분명하다. 감추고 싶고 미화하고 싶은 것이다. 삼성과 현대, SK, LG 등 이 나라 재벌들은 어떠한가. 보수권력에 온갖 혜택과 열매를 나눠가졌지만 정작 외환 위기나 금융위기가 찾아왔을 때 노동자와 농민 약자에게 고통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괴물과 공룡이 된 재벌은 국가권력도 우습게 본다. 불의한 권력하나 바꾼다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진정 올바르고 도덕적인 보수가 나타나길 희망한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새로운 사회를 생각한다면 정의롭고 올바른 나라를 우리 모두가 함께 꿈꾸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피니언 칼럼(20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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