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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듀아르도 마타라쪼 수플리시 브라질 상원의원(노동자당·상파울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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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내년부터 시민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한다. 이 제도 도입에 앞장섰던 에듀아르도 마타라쪼 수풀르시 브라질 상원의원이 기본소득 제도의 장점을 설명하는 글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현재 브라질은 ‘볼사파밀리아’(Bolsa Familia)라 불리는 소득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는 가구는 모두 1130만가구에 이른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 2003년 당시의 350만가구에 견주면 놀랄만한 성과다. 볼사파밀리아프로그램이 대략 브라질 인구 1억9030만명의 4분의1에 해당하는 4500만명을 끌어안아, 불평등지수(지니계수)는 2002년 0.58에서 2007년 0.55로 개선됐다.
지난 2004년에는 볼사파밀리아프로그램의 혜택 폭을 더욱 확대하는 법률안이 브라질 의회를 통과하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이에 서명했다. 이제 이른바 ‘시민기본소득’이라 불리는 제도가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것이다. 시민기본소득은 처음에는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혜택을 받지만, 차츰 성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 대상이 확대된다. 브라질에 5년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까지 포함돼 아무런 사회경제적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왜 모든 사람에게 소득을 나눠줘야 할까? 심지어 혜택을 받을 필요도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 제도의 장점은 무엇일까?
첫째, 각자가 공식 및 비공식 시장에서 얼마를 버는지를 알기 위해 필요한 복잡한 관료제의 폐해가 없어진다. 둘째, 정부 보조금을 받고자 자신의 낮은 소득을 증명해야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고 그들을 ‘저소득자’라고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행위를 없앨 수 있다. 셋째, 누구나 일정 수준의 시민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를 나눠갖는 과정에 참여하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
넷째, 개인의 소득수준에 근거해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의 특징인 ‘의존 현상’을 없앨 수 있다. 즉 기존의 여러 지원 프로그램은 수급자의 근로활동이 늘어나고 그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지원금이 없어지므로, 오히려 자발적으로 근로활동을 늘리려는 유인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반해 시민기본소득은 근로활동을 적극적으로 늘리더라도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본소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오히려 북돋울 수 있다.
다섯째, 노동시장에서의 지위와 무관하게, 즉 일자리를 갖고 있느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각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보장할 수 있다.
여섯째, 경제성장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구매력을 높여줌으로써 고용 창출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일곱째, 육아와 노인 부양 등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의미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다. 예술단체나 공동체, 종교단체 활동의 참여 등이 대표적 예이다.
여덟째, 모든 사람들에게 소득에 대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확장시킬 수 있다. 오늘날 수많은 지주와 기업가들은 별다른 경제활동 없이도 지대와 이윤, 이자의 형태로 소득을 누릴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보장해줌으로써 누구나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라는 권리를 왜 부여하지 못하겠는가?
아홉째, 각 개인이 누려야할 존엄성과 자유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시민기본소득은 자신의 건강이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는 비참한 일자리에 대해 누구나 거부할 기회를 넓혀줌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준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에 더해 기본소득마저 누릴 수 있다면 그들의 생산성 자체가 올라갈 수 있다. 이는 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나는 한국에도 진지하게 이 제도의 도입을 권하고 싶다. 이미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지난 26년 동안 시행하면서 성공적인 경험을 했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80년대 초반부터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들은 해마다 동일한 ‘배당금’을 주고 있다. 초창기 300달러였던 그 액수는 지난해 2609달러까지 인상됐다. 그들은 지난 1976년 자연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떼내 모든 주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알래스카영구기금’을 만들었다. 그 돈으로 미국 정부의 채권이나 다른 나라의 기업 지분 또는 부동산 등에 투자한다. 80년대 초반 10억달러였던 기금 규모는 오늘날 400억달러로 불어났다. 알래스카주에서만 존재하는 시민기본소득은 미국의 전체 주 가운데 알래스카를 가장 평등한 주로 만드는데 큰 구실을 했다. 아마도 한국이 이런 문제의식에 빨리 눈 뜬다면 기본소득과 관련해 분명 아시아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해 257조원 들이면 ‘사각지대 없는 복지’ |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 ‘기본소득 모델’ 한국 적용해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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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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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의 불씨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지난 2월‘모든 국민에게 즉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 한 권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기본소득 도입 전략을 다룬 연구 프로젝트의 첫번째 산물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2009년 기준)은 △39살 이하 연 400만원 △40~54살 연 600만원 △65살 이상 연 900만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 연 550만원씩의 수당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녀 두 명을 둔 30대 부부는 해마다 160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 기본소득 수령액은 해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늘어나게 된다.
불로·투기소득 세율높여 부족재원 메우고 현금지급형 복지예산, 기본소득으로 대체 “국민 90%가 이익…비정규직 해법 열릴것”
이 제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재원은 2009년 기준으로 대략 257조원. 2009년 예산 규모와 거의 맞먹는다. 보고서는 기존의 연금 및 실업급여 등 다양한 현금지급형 사회복지 예산을 모두 기본소득 지급으로 돌리고, 세원 양성화나 불로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으로 300조원이 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식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나 이자소득세 등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적어도 기본소득 제도를 유지하는 데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사각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복지전략이자, 불로소득을 조장하는 현재의 불평등한 조세체계를 뜯어고치는 조세 변혁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모델에 따를 경우, 우리나라 전체 국민 가운데 10% 정도의 고소득자 소득이 나머지 90%의 기본소득으로 이전돼 실업자와 노령층,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됐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이 제도가 새로운 실마리를 열어줄 것이라고 내세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은 “그간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나눌 경우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 때문이었다”라며, “기본소득이야말로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려는 압력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회계층과 연대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승협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기본소득은 공동체를 위한 활동 등 그간 가치 있는 노동으로 대접을 못받던 다양한 활동을 자연스레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특히 여성운동, 백수운동, 실업자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사이버공간으로도 옮겨붙었다. 지난 2월말 기본소득 제도에 관심을 둔 국내 연구자와 사회활동가, 노조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카페(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됐다. 이들은 조만간 각국의 기본소득 관련 단체의 연대기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한국지부를 결성하고, 내년에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정례행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들은 또 기본소득이 노동시간 단축과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별도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노동과는 분리된’ 기본소득을 공론의 무대로 올려 놓으려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결국 기본소득이야말로 일종의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국민 90% 이상이 이익을 보는 모델”이라고 강조한 뒤, “진보세력은 세금을 더 내더라도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은 새로운 분배 패러다임이자, 동시에 보다 광범위한 사회계층을 급진화·진보화시키는 진보세력 집권전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