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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노후보내기1<필리핀>

by changebuilder 2005. 9. 27.
기사 분야 : 사회

등록 일자 : 2005/09/26(월) 03:06

[내 나이 60엔 어떻게 사나]2부 해외에서 노후 보내기<1>필리핀

《은퇴 후 동남아시아에서 생활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일단 필리핀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물가가 싸고 한국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에서의 삶을 국내처럼 쉽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사전에 얼마나 준비하고 연구했느냐가 해외 생활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필리핀 바기오 시에 정착한 정원영(鄭元永·61) 김순옥(金順玉·60) 씨 부부의 경우는 좋은 모델이 될 법하다.》

1987년 육군 중령으로 전역한 정 씨는 이후 한국투자신탁에서 10년간 일했다. 직장을 떠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월로 당시 그의 나이는 55세였다.

퇴직 당시 그의 재산은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26평형 아파트 한 채 3억 원, 지방의 대지 1억 원, 현금과 주식 1억 원 등 모두 5억 원 정도였다.

퇴직 이후 그의 삶은 고달팠다. 군인연금으로 월 185만 원, 국민연금이 월 33만 원, 그리고 베트남전 참전 고엽제 후유증 보상금 월 23만 원 등 총 241만 원의 고정수입이 있었으나 2명의 자녀가 아직 대학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재취업을 위해 입사 지원서를 10군데도 더 냈으나 취직은 불가능했다. 저축을 잘라 쓰면서 버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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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한국에서의 생활은 직장에 다닐 때보다 돈이 더 들어가는 구조였다. 은퇴해도 경조사는 무시할 수가 없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지출로 연결됐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그는 결국 ‘좋아하는 골프도 즐기면서 만족한 여생을 보내기 위해’ 동남아 국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때가 2003년 무렵이었다. 아내는 처음에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 씨 입장에서는 ‘이 땅에서 백수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처음엔 호주나 뉴질랜드를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소득과 물가를 감안할 때 필리핀이 최대공약수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곤 인터넷을 통해 필리핀의 모든 골프장과 지역 한인회 홈페이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어학원과 교회, 심지어 하숙집 사이트까지 샅샅이 뒤졌다. 필리핀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노트에는 100개 이상의 필리핀 내 전화번호가 등재됐다.

정 씨는 2004년 1월 혼자 마닐라 인근 케손 시의 하숙집에 투숙해 두 달간 머물면서 앙헬레스 수비크 바기오 민다나오 세부 등지를 다니면서 현지답사를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기후가 좋고 물가가 싼 바기오를 선택했다.

이것으로 그가 바로 정착한 것은 아니다. 작년 5월 부부는 같이 바기오를 둘러보고 이번에도 정 씨 혼자 하숙집에 투숙했다. 현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30여 곳을 둘러볼 정도로 발품을 판 끝에 드디어 결정한 집이 이 도시 북쪽의 고급 주택단지 내에 있는 필리핀인의 별장. 3층인 이 집은 1층에 벽난로가 설치된 거실과 주방, 도우미 숙소가 있고 2층과 3층에 각각 방 2개와 화장실이 있는 구조. 가구나 침대 주방시설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월세 2만 페소(약 40만 원·1페소는 18.32원이지만 통상 20원으로 계산)를 주기로 하고 2년 계약을 했다.

다소 큰집을 구한 이유는 가족 친구 등 누구라도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 씨 부부는 나름대로 바쁘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인근 유황온천에 들러 온천욕을 한다. 또 몇 사람이 어울려서 어촌에 나가 갓 잡은 참치를 사서 회 파티도 즐긴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다 보니 골프를 무척 좋아하지만 실제 라운딩 횟수는 매월 10회를 넘기기 어렵다.

그는 “사전 발품을 많이 판 덕에 실제로 왔을 때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은퇴 후 해외 생활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은 △사전에 정보를 많이 얻고 △결정을 쉽게 하지 말고 △현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퇴 후 해외 생활이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앙헬레스에서 무보수로 한국인학교 교장을 맡으며 봉사를 겸해 노후를 보내고 있는 진대기(陳大基·69) 윤숙자(尹淑子·67) 씨 부부는 “함께하는 이웃이 없어 외롭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고교 교장으로 은퇴한 후 이곳에 온 진 씨 부부를 교민들은 존경하긴 하지만 다소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이들 부부는 교민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진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골프를 치긴 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며 “3년간의 봉사기한을 마치고 나면 귀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 필리핀 정착 정보


필리핀의 은퇴 생활 후보지로는 기후가 좋은 산중 휴양도시인 바기오가 가장 권장할 만하다. 이 밖에 앙헬레스 세부 다바오 수비크 타가이타이 등을 눈여겨볼 만하다.

▽바기오=루손 섬 북부 최대의 휴양 관광도시로 해발 1300∼1700m의 산중에 형성된 도시. 처음부터 미군의 휴양도시로 개발돼 숲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소나무가 많다. 기온은 연중 13∼26도로 겨울과 여름이 없는 도시다.

서쪽으로는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해변이 있으며 동쪽은 고산지대다. 인구는 40만 명으로 대학이 5개 이상이나 되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의 영어 연수생이 많아 현재 교민이 4000여 명에 달한다. 병원 백화점 등 도시의 웬만한 기반시설은 다 갖추고 있어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큰 불편이 없다. 단점은 접근성이 나쁘다는 것이다. 마닐라에서 직행버스로도 7시간이나 걸린다.

▽앙헬레스=마닐라 북쪽으로 100km 되는 곳에 있는 도시로 옛날 미군의 클라크 공군기지가 있던 지역. 이 지역에는 퇴역 후 그대로 눌러앉아 사는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거주자가 1만 명가량 된다. 기후는 더운 편. 옛 클라크 공군기지는 필리핀 정부가 활용하기 위해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해 개발 중이다. 한국 교민은 1500여 명. 한국인 사업가가 옛 미군장교 숙소를 시니어 빌리지를 겸한 리조트로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접근성은 가장 좋은 편. 인천∼앙헬레스 직항이 있다.

○ 은퇴비자 발급 여부

필리핀 정부는 외국의 고정 수입이 있는 은퇴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실상 영주나 다름없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은퇴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50세 이상은 미화 5만 달러를 필리핀 은퇴청이 지정하는 필리핀 국내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이다. 35∼50세는 7만5000달러.

그러나 현지 은퇴자들의 반응은 굳이 은퇴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관광비자로 입국해 살아도 비자 기간이 만료될 경우 출국할 필요 없이 거주지에서 월 5만 원 정도만 내면 비자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 자주 내왕할 사람은 굳이 목돈을 필리핀 은행에 넣어 둘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해안도시… 라운딩… 여유있는 노후
동남아에서의 노후생활은 ‘꿈’이 아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정보 수집을 위해 발품을 많이 팔수록 현지 적응은 쉬워진다. 필리핀 바기오의 집 근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정원영 씨는 골프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자랑하고(왼쪽 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근교에 사는 황의준 오희순 씨 부부는 친구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한다(왼쪽 아래). 오른쪽은 보르네오 섬의 해안도시 코타키나발루에 사는 윤찬수 씨 거실에서 내다본 아파트 단지. 일급 호텔을 연상케 한다.

은퇴 후 필리핀의 산중도시 바기오에서 2004년부터 생활하고 있는 정원영(鄭元永·61) 김순옥(金順玉·60) 씨 부부는 “이곳에서 비로소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제2의 인생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나름대로 바쁘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면서 “평생을 이곳에 머물면서 1년에 한두 번씩 자식들이 있는 한국에 드나들며 살겠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외국의 은퇴자를 유치하기 위해 운영하는 ‘말레이시아 마이 세컨드 홈 프로그램’에 참가해 지난해부터 쿠알라룸푸르 근교에서 살고 있는 황의준(黃義俊·72) 오희순(吳姬順·71) 씨 부부는 “세계 각국의 온갖 음식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어 식도락가인 우리 부부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살기에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 친구 두 가족이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크게 모아둔 재산이 없는 보통 한국인이 은퇴 후 연금 수입이나 임대료 등 월 200만 원 안팎의 고정 수입으로 동남아 지역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이들 국가를 17일간 둘러보며 취재한 결과다.

필리핀의 바기오와 앙헬레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와 코타키나발루(보르네오 섬), 네팔의 카트만두와 포카라, 태국의 방콕과 치앙마이 등에서 노후를 보내는 한국인들은 현지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보였다.

태국 북부의 관광문화 도시인 치앙마이에서 사는 김호운(金鎬運·71) 한영숙(韓英淑·68) 씨 부부도 “치앙마이는 우리가 경험한 곳 중 가장 만족스러운 곳”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생활비는 지역과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부부 기준으로 필리핀은 월 200만 원, 말레이시아는 220만∼250만 원, 네팔은 150만 원, 태국은 200만∼220만 원 정도가 들었다. 가사 도우미를 두고 골프와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은 물론 1년에 한두 차례 한국에 다녀가는 여비까지 포함한 것이다.

이들은 노인에게 적합한 따뜻한 기후와 한국보다 청정한 환경, 저렴한 생활비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물론 이들 중에는 가족과의 단절감, 외국생활에서 오는 외로움, 언어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까’라는 것은 이미 은퇴를 했거나 혹은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도 은퇴 시기는 앞당겨지는 추세와 더는 자식의 부양을 기대하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은퇴 후를 대비하는 것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자신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 우리보다 생활비는 적게 들면서 환경과 기후 조건은 좋은 동남아 국가에서 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 취재는 많은 독자의 문의와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40대 중반 이후이며 집 1채를 갖고 있고 연금이나 임대료 등 현재 기준 200만 원 안팎의 노후소득을 예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체로 겨울을 포함한 1년의 절반은 동남아국가에서, 나머지는 한국에서 살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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