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모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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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 김우택 | 글쓴 날짜 | 2006년 10월 9일 |
제 목 | 스웨덴 복지모델: ‘부러운’ 모델인가, 반면교사 (反面敎師) 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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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북유럽의 인구 천만명도 되지않는 작은 나라 스웨덴의 선거 결과가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스웨덴의 선거결과가 스웨덴 복지모델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냐, 스웨덴 국민들은 그것의 포기를 선택한 것이냐, 또 노무현 정권의 정책이 스웨덴 복지모델을 벤치마킹 하고 있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슈는 스웨덴 경제모델이 따라갈만한 정책모델인지 아니면 반면교사로 삼을 모델인지 하는 점일 것이다. 청와대나 정부 여당의 주장처럼 “스웨덴 총선결과를 복지정책의 실패로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국민의 여론이란 어디서나 변덕스러울 뿐 아니라 경제정책의 판단만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스웨덴 총선의 주요 쟁점도 ‘숨겨진 실업’,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같은 경제이슈 뿐 아니라 권력층의 스캔들이나 집권당의 무능력 등이었던 데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승리한 우파 연합의 선거공약이 복지모델을 유지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개혁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이 법인세 인하, 부동산보유세 폐지 등의 세금감면, 국영기업의 민영화, 약간의 복지혜택축소 등 시장 친화적 효율성 제고 방안을 주장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복지모델의 연속성을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서였던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스웨덴 경제의 구체적인 상황을 들여다보지 않고 총선결과만을 가지고 스웨덴 국민들이 복지 모델의 포기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다. 20세기 스웨덴 경제 이제 스웨덴 경제모델이 실패한 복지모델인지 아니면 벤치마킹 해야 하는 정책모델인가를 생각해 보자. 분명 현재의 스웨덴 거시경제 지표들은 부러움을 살만하다. 높은 소득수준, 건전한 국제수지와 정부재정, 낮은 물가상승률, 경쟁력을 자랑하는 세계적 대기업들, 전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사회복지제도 등. 그러나 복지모델의 성패 여부는 경제의 현재의 건전성보다는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역동성과 국민들의 복지수준의 장기추세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일인당 GDP의 상대적 수준 변화, 일자리 창출 능력의 장기적 추세, 기업들의 역동성의 변화추이 등이 그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20세기 스웨덴 경제를 뒤 돌아 보고 언제 어떤 정책 하에서 스웨덴이 풍요로워 졌으며, 혹 스웨덴 경제가 활력을 잃고 상대적 후퇴를 경험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언제부터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의 경제모델인가 20세기 전?후반기 간의 상이한 경제성과는 스웨덴 사회복지 모델로 알려진 하나의 정책모델이 시대상황 변화와 경제성장 단계에 따라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인가? 아니면 두 시기 스웨덴 경제는 서로 다른 정책모델을 채택하고 있었고 상이한 경제성과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가? 1932년 집권한 사회민주당은 생산의 사회화와 ‘큰 정부’가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이상으로 선택했고, 세금인상과 정부 복지지출 증대 정책을 실천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도의 경제에서의 정부비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상으로 전전에는 지구상에 ‘큰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스웨덴도 예외는 아니었고, 당시 서구제국의 GDP의 정부부문의 비중은 아담 스미스가 지지한 ‘야경국가’ 수준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1960년까지도 스웨덴의 정부부문 비중은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편 사민당 정부는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인 생산의 사회화는 뒤로 미룬 채, 당시의 복지모델의 다른 중요한 축인 기업의 소유와 경영권을 보장하는, 특히 대기업 중심의 경쟁적 시장질서를 유지했다. 따라서 1950년 이전의 스웨덴 경제모델은 사민당 집권 이전은 물론이고 집권 이후도 ‘작은 정부’의 경쟁시장 모델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소위 ‘스웨덴식 경제모델’은 렌-마이드너(Rehn-Meidner)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의 정책 모델인 셈이다. 그 복지모델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자 노동총연맹(LO)의 경제이론가인 마이드너의 증언에 따르면 이 모델은 전후 복구기의 경기과열과 물가불안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것으로, 그 특징은 완전고용과 평등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큰 정부의 복지정책, 연대적 임금정책,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실업)정책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스웨덴은 두 개의 상이한 경제모델을 시험했고, 그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경제성과도 경험한 셈이다. 스웨덴은 지금도 복지모델에 충실한가 큰 정부의 복지모델을 현실화 시킨 노동총연맹은 1970년대 들어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였던 생산의 사회화를 실현시킬 마이드너 계획을 만들고, 사민당은 1976년 노동의 경영참여를 확대하는 공동결정법(Codetermination Act)을 제정한다. 그러나 이미 복지모델의 부작용을 우려한 스웨덴 국민들은 1976년과 1979년 총선에서 우파 연합을 선택함으로써, 마이드너 계획에 의한 기업의 사회화는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그 이후 15년 주기의 사민당과 우파연합 간의 정권교체는 복지모델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이중적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복지병에 대한 우려와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현행 복지제도가 주는 일신의 안일을 포기하기는 싫은 심정 말이다. 이제 20세기 후반기 스웨덴 경제를 활력을 상실한, 그래서 부러워하기 보다는 우려되는 경제로 평가하고, 그러한 성과를 복지모델과 연관시킨 본고의 논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마이드너의 스웨덴 복지모델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면서 글을 끝내려 한다. 물론 그는 모델의 실패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1980년대 후반 스웨덴은 복지모델의 적용을 게을리했고, 1990년대에는 복지모델은 목표에서도 적용에서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그 증거로 든 것이 이번 총선에서 이슈가 되었던 ‘숨겨진 실업’이었다. 이미 1997년 인터뷰 당시 그는 스웨덴의 실제 실업률을 15%로 추정하고 있었다. 지금 스웨덴 사회복지 모델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1980년대 영국의 복지병을 치료한 대처식의 개혁을 통해 복지모델의 수명을 연장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복지제도의 안일함에 안주하면서 내리막 길을 계속 갈 것인지는 스웨덴 국민과 정치 지도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한국국민과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어느 스웨덴 모델을 배우고 어느 모델을 반면교사 (反面敎師)로 삼을지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우택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용어설명: 타산지석 (他山之石)과 비슷한 뜻을 가지나, 그보다 의미가 더욱 직설적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 [毛澤東]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하였다. 즉, 이는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그러한 반면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요즘은 보통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을 말한다.(출처: 두산세계대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