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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복지모델 1

changebuilder 2006. 10. 18. 12:34
Executive Essay

글 쓴 이 김우택 글쓴 날짜 2006년 10월 9일
제     목 스웨덴 복지모델: ‘부러운’ 모델인가, 반면교사 (反面敎師) 인가?

스웨덴의 총선결과가 우리사회에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총선결과를 복지정책의 실패로 단정지은 반면 정부 여당은 논리비약이라고 주장한다. 이글에서 필자는 20세기 스웨덴의 경제 발전과정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고 왜 전반기에는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이루고 후반기에는 그렇지 못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원인은 서로 다른 경제모델(작은 정부 vs. 큰 정부)을 추구한 데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또 스웨덴 복지모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 주]

한국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북유럽의 인구 천만명도 되지않는 작은 나라 스웨덴의 선거 결과가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스웨덴의 선거결과가 스웨덴 복지모델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냐, 스웨덴 국민들은 그것의 포기를 선택한 것이냐, 또 노무현 정권의 정책이 스웨덴 복지모델을 벤치마킹 하고 있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슈는 스웨덴 경제모델이 따라갈만한 정책모델인지 아니면 반면교사로 삼을 모델인지 하는 점일 것이다.

청와대나 정부 여당의 주장처럼 “스웨덴 총선결과를 복지정책의 실패로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국민의 여론이란 어디서나 변덕스러울 뿐 아니라 경제정책의 판단만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스웨덴 총선의 주요 쟁점도 ‘숨겨진 실업’,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같은 경제이슈 뿐 아니라 권력층의 스캔들이나 집권당의 무능력 등이었던 데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승리한 우파 연합의 선거공약이 복지모델을 유지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개혁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이 법인세 인하, 부동산보유세 폐지 등의 세금감면, 국영기업의 민영화, 약간의 복지혜택축소 등 시장 친화적 효율성 제고 방안을 주장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복지모델의 연속성을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서였던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스웨덴 경제의 구체적인 상황을 들여다보지 않고 총선결과만을 가지고 스웨덴 국민들이 복지 모델의 포기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다.

20세기 스웨덴 경제

이제 스웨덴 경제모델이 실패한 복지모델인지 아니면 벤치마킹 해야 하는 정책모델인가를 생각해 보자. 분명 현재의 스웨덴 거시경제 지표들은 부러움을 살만하다. 높은 소득수준, 건전한 국제수지와 정부재정, 낮은 물가상승률, 경쟁력을 자랑하는 세계적 대기업들, 전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사회복지제도 등. 그러나 복지모델의 성패 여부는 경제의 현재의 건전성보다는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역동성과 국민들의 복지수준의 장기추세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일인당 GDP의 상대적 수준 변화, 일자리 창출 능력의 장기적 추세, 기업들의 역동성의 변화추이 등이 그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20세기 스웨덴 경제를 뒤 돌아 보고 언제 어떤 정책 하에서 스웨덴이 풍요로워 졌으며, 혹 스웨덴 경제가 활력을 잃고 상대적 후퇴를 경험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언제부터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스웨덴 경제의 장기추세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스웨덴 경제와 그 이후와는 여러 측면에서 질적인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료 이용의 편의상 1950년을 분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자. 1870년에서 1950년까지 스웨덴 경제는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역동적인 경제였다. 반면 1950년 이후에는, 계속 높은 일인당GDP를 자랑하고는 있지만, 스웨덴 경제는 이미 활력을 잃어가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1950년까지의 고도성장으로 1870년 0.6%이던 세계전체GDP에서 차지하는 스웨덴의 몫은 1950년에는 0.9%로 높아졌다. 그러나 그 이후 스웨덴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고 20세기 말에는 0.5%까지 감소했다. 같은 기간동안 2.3%에서 3%, 7.7%로 계속 비중을 높인 일본과는 대비되는 실적이다. 또 높은 일인당GDP 세계 랭킹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의 상대적 소득수준의 하락을 보지 못한다. 1950년 OECD평균소득의 1.2배이던 스웨덴의 일인당국민소득이 1990년대 초 0.9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회복하고는 있으나 아직 평균을 조금 하회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쟁점이 되었던 높은 ‘숨겨진’ 실업률도 20세기 후반 활력을 잃어온 스웨덴 경제의 장기추세를 그대로 반영하는 징후의 하나다. 20세기 후반 스웨덴의 민간부문은 새 일자리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오십 여년 동안 스웨덴 경제가 만들어낸 8십여 만개의 새 일자리는 모두, OECD국가 중 공공부문 효율성 최하위로 평가된, 정부부문에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민간부문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규제 등으로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어 새 기업이 창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웨덴은 인구고령화 뿐 아니라 기업의 고령화도 함께 걱정해야만 하게 되었다. 스웨덴의 50대 상장기업(2000년 기준) 중 31개사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창업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창업된 기업은 8개사 뿐이고, 1970년 이후 창업된 기업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스웨덴 기업의 고령화 문제와 스웨덴 경제가 얼마나 활력을 잃어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의 경제모델인가

20세기 전?후반기 간의 상이한 경제성과는 스웨덴 사회복지 모델로 알려진 하나의 정책모델이 시대상황 변화와 경제성장 단계에 따라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인가? 아니면 두 시기 스웨덴 경제는 서로 다른 정책모델을 채택하고 있었고 상이한 경제성과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가? 1932년 집권한 사회민주당은 생산의 사회화와 ‘큰 정부’가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이상으로 선택했고, 세금인상과 정부 복지지출 증대 정책을 실천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도의 경제에서의 정부비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상으로 전전에는 지구상에 ‘큰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스웨덴도 예외는 아니었고, 당시 서구제국의 GDP의 정부부문의 비중은 아담 스미스가 지지한 ‘야경국가’ 수준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1960년까지도 스웨덴의 정부부문 비중은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편 사민당 정부는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인 생산의 사회화는 뒤로 미룬 채, 당시의 복지모델의 다른 중요한 축인 기업의 소유와 경영권을 보장하는, 특히 대기업 중심의 경쟁적 시장질서를 유지했다. 따라서 1950년 이전의 스웨덴 경제모델은 사민당 집권 이전은 물론이고 집권 이후도 ‘작은 정부’의 경쟁시장 모델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소위 ‘스웨덴식 경제모델’은 렌-마이드너(Rehn-Meidner)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의 정책 모델인 셈이다. 그 복지모델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자 노동총연맹(LO)의 경제이론가인 마이드너의 증언에 따르면 이 모델은 전후 복구기의 경기과열과 물가불안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것으로, 그 특징은 완전고용과 평등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큰 정부의 복지정책, 연대적 임금정책,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실업)정책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스웨덴은 두 개의 상이한 경제모델을 시험했고, 그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경제성과도 경험한 셈이다.

스웨덴은 지금도 복지모델에 충실한가

큰 정부의 복지모델을 현실화 시킨 노동총연맹은 1970년대 들어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였던 생산의 사회화를 실현시킬 마이드너 계획을 만들고, 사민당은 1976년 노동의 경영참여를 확대하는 공동결정법(Codetermination Act)을 제정한다. 그러나 이미 복지모델의 부작용을 우려한 스웨덴 국민들은 1976년과 1979년 총선에서 우파 연합을 선택함으로써, 마이드너 계획에 의한 기업의 사회화는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그 이후 15년 주기의 사민당과 우파연합 간의 정권교체는 복지모델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이중적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복지병에 대한 우려와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현행 복지제도가 주는 일신의 안일을 포기하기는 싫은 심정 말이다.

이제 20세기 후반기 스웨덴 경제를 활력을 상실한, 그래서 부러워하기 보다는 우려되는 경제로 평가하고, 그러한 성과를 복지모델과 연관시킨 본고의 논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마이드너의 스웨덴 복지모델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면서 글을 끝내려 한다. 물론 그는 모델의 실패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1980년대 후반 스웨덴은 복지모델의 적용을 게을리했고, 1990년대에는 복지모델은 목표에서도 적용에서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그 증거로 든 것이 이번 총선에서 이슈가 되었던 ‘숨겨진 실업’이었다. 이미 1997년 인터뷰 당시 그는 스웨덴의 실제 실업률을 15%로 추정하고 있었다.

지금 스웨덴 사회복지 모델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1980년대 영국의 복지병을 치료한 대처식의 개혁을 통해 복지모델의 수명을 연장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복지제도의 안일함에 안주하면서 내리막 길을 계속 갈 것인지는 스웨덴 국민과 정치 지도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한국국민과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어느 스웨덴 모델을 배우고 어느 모델을 반면교사 (反面敎師)로 삼을지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우택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용어설명: 타산지석 (他山之石)과 비슷한 뜻을 가지나, 그보다 의미가 더욱 직설적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 [毛澤東]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하였다. 즉, 이는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그러한 반면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요즘은 보통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을 말한다.(출처: 두산세계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