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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시대17

changebuilder 2005. 11. 15. 15:03
(퇴직연금시대)<3부>④5년이 성패를 좌우한다
절름발이 법으로는 제도 정착 기대할 수 없어
`당근`과 `채찍` 적절한 조화 절실
입력 : 2005.11.11 11:44
[이데일리 최현석 조진형 기자] 다음달 첫 선을 보이는 퇴직연금이 조기에 2층 연금구조로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노령화에 대비한 사회 안정망이라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기업이나 근로자, 심지어 금융회사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퇴직연금의 조기 정착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기존 퇴직금 제도가 존속한다는 점이다. 퇴직 일시금제도보다 특별히 유리할 것이 없다면 굳이 퇴직연금으로 갈아타려는 기업이나 근로자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0년까지 5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퇴직연금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시한 `5년`은 단순한 유예기간을 떠나 퇴직연금의 운명을 판가름 할 중요한 시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퇴직연금 제도가 고위험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퇴직금 제도를 5년내 확실하게 대체할 수 있도록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근과 채찍을 모두 갖고 있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 5년안에 성패.."차별화된 혜택 필수"

올 12월부터 퇴직연금이 도입되더라도 기존 퇴직금 제도는 없어지지 않는다. 5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0년 퇴직보험과 퇴직신탁이 폐지되더라도 기존 퇴직금 제도는 존속된다. 퇴직금 제도에 폐지에 대한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위험성이 높으나,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할 수 있는 퇴직금 제도가 존재하는 한 퇴직연금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존 퇴직금 제도에 안주하려는 기업과 근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세금 감면 등 차별화된 혜택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 주요 세제혜택 내용

정부는 여유가 있는 근로자가 퇴직연금외에 확정기여(DC)형에 추가로 불입할 경우 소득공제를 해주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금융회사들은 정부의 `당근`이 한참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소득공제 한도 300만원 가운데 개인연금저축 한도 240만원을 제외할 경우 DC형 추가 불입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는 60만원에 불과하다. 월 20만원씩 개인연금저축을 들고 있는 근로자는 퇴직연금에 추가 불입하더라도 5만원에 대해서만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연금소득 수령시 소득공제 한도도 충분치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가 연금소득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를 기존 6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인상키로 했으나, 2008년부터 국민연금을 정식으로 수령받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으로만 연간 1200만원 이상을 수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퇴직연금용 소득공제 한도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 점진적 투자제한 완화도 한 몫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에 대한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평균 6~7%에 달하는 임금상승률을 넘어서는 운용수익률을 내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조치라는 것이다.


▲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한도

정부는 위험자산에 대한 전체 투자한도를 삭제하기는 했으나, 상장주식이나 혼합형 간접투자증권 등 개별부문에 대한 투자제한은 남아 있다.

국내 자본시장의 성숙도와 함께 투자한도를 적절한 시기에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위험성을 감안해 운용 실적과 건전성에 대한 감독은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위험관리와 투자제한을 연동하는 방법 등 다양한 정책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스위스에서는 기금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연금기금(Pension Fund)에 대해 자산은 계리사(Actuary)에게 부채는 회계사(Accountant)에게 보고토록 의무화해 놓고 있다. 대신 양측으로부터 일정 기준 이상의 합격점을 받을 경우 50%인 주식투자 비중의 한도를 철폐해 주는 당근도 제시하고 있다.

◇ "채찍도 들어야"..퇴직금 자연소멸 유도

새로운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당근과 함께 채찍도 필요하다.

퇴직연금제는 수급권 보장이 불투명한 기존 퇴직금 제도의 대안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퇴직금제의 사외적립을 유도하는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퇴직금을 고집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

이번에 정부는 기업이 퇴직금 지급을 위해 사내에 충당금을 쌓을 경우 손비로 인정했던 연간 총급여액의 10%를 내년부터는 5%까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또 누적된 충당금의 40%까지 인정됐던 손비인정 비율도 30%로 축소됐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사외적립을 꺼려하는 중소기업이 꿈쩍도 안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퇴직금을 사외적립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손비 인정범위를 더욱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장 퇴직금이 존치하는 만큼 한꺼번에 혜택을 없애기는 무리지만, 향후 순차적으로 혜택을 줄여 결국에는 손비가 전혀 인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권병구 삼성생명 기업연금 부장은 "퇴직연금 도입이 사내 충당을 사외 적립으로 유도하는 측면도 있는 만큼 퇴직일시금에 대한 손비 인정비율은 일본처럼 점진적으로 없애는 것이 맞다"며 "퇴직연금 손비 혜택 기준은 기존 추계액 대신 임금상승률 등이 감안된 장래 부채부담액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자신감은 신뢰에서"..정부-금융기관 호흡 중요 

퇴직연금의 성공을 위해서는 감독당국과 금융기관의 호흡도 잘 맞아야 한다. 퇴직연금 참여자인 기업과 근로자의 신뢰가 싹틀 수 있는 기본 바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기관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철저한 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우선 금융기관간 과당 경쟁을 부추길 수 있는 수수료 등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의 제살 깎아먹기식 수수료 인하 경쟁은 결국 근로자의 수급권에도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이와함께 DB형의 경우 기업과 금융회사가 일명 `꺾기` 등 근로자의 이익에 반하는 대가성 금전 계약 체결 가능성 등도 견제돼야 한다.

물론 지나친 감독은 금융기관의 활동에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금융기관 스스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자율적 규제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판매자 교육을 통해 과도한 수익률 홍보를 막고 투자자 교육 서비스도 병행하는 것은 기본이다. 

류건식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 재무연구팀장은 "일본처럼 1~2년내에 정착토록 노력하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처럼 지속적으로 신뢰도에 대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금융회사 스스로 모럴해저드 방지와 공정한 경쟁의 장 마련을 위해 노력할 때 당국으로부터의 간섭도 덜받는 시스템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회계기준 선진화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퇴직 일시금용 회계기준으로는 국제기준에 맞추기 어렵고 기업이나 금융회사 부실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는 우려가 있다. 연금계리사나 공인회계사 등 제3자를 통한 운용 결과의 정기적 공시 등도 퇴직연금 정착을 위해 필요한 부분으로 꼽히고 있다.

권병구 부장은 "우리나라도 2~3년내 퇴직연금이 국제회계기준의 적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에 맞춰 기업들이 부담금 산출 등 연금 계리를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노동법이나 금융감독 규정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퇴직연금에 대한 수급권 문제도 추가 논의될 부분이다. 이와관련해 미국과 같은 연금지급보증공사(PBGC)를 설립하는 방안과 임금채권보장법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중대한 사안인 만큼 철저한 사전준비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