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연계형 은퇴마을
대학서 인생 2막 사는 美 은발청춘
파워시니어 '빅뱅'
애리조나주립대 캠퍼스 한복판
시니어 모여사는 '은퇴자 마을'
삼삼오오 모여 스포츠 즐기고
20대와 같이 인문학 강의 들어
CEO 출신 시니어 창업 조언 등
대학생들과 소통프로그램 활발

강의실에 도착한 이들은 새 학기를 맞은 대학생처럼 옆자리 학생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 이름을 물어봤다. 첫 수업 시간 교수가 부른 출석에 한 노인이 손을 들었다. 교수는 웃으며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말했다. 은퇴 전 화학과 교수였다는 켈리 오키프(76)는 “학교에서 그동안 아내와 함께 미국 정치, 지리, 자연사 관련 수업을 들어왔다”며 “지난 학기엔 의예과 학생 20~25명을 대상으로 직접 소규모 그룹 강의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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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서 대학생과 함께 수업
미국에선 은퇴한 시니어가 지역 대학에서 거주하는 대학기반은퇴자공동체(UBRC)가 확산하고 있다. 대학에 만드는 은퇴자 공동체로 미국에서만 100여 곳이 조성돼 있다. 미라벨라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니어 레지던스로 꼽힌다. 거주지가 캠퍼스 한복판에 있고, 대학 교직원이 관련 업무를 직접 관리한다.ASU는 미라벨라에 입주하는 은퇴자에게 대학 출입증을 지급한다. 일종의 학생증이다. 출입증만 있으면 강의실, 도서관, 체육관 등 일반 대학생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교수가 거절하지 않는 한 모든 수업에 자유롭게 등록할 수 있다. ASU 캠퍼스 곳곳에선 학생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노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미라벨라 내부에서는 은퇴자와 대학생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다. 미라벨라에선 합창, 음악 테라피, 오케스트라, 댄스 등 ASU 학생과 입주 은퇴자가 함께 어울리는 행사와 수업이 거의 매일 열린다. 미라벨라에서 만난 음대생 그레이디 뉴섬(19)은 “매주 월요일 미라벨라에서 합창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며 “처음엔 은퇴자와 함께 대회를 준비하는 게 어색했지만, 지금은 기다려지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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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과 시니어가 윈원
ASU는 미라벨라를 통해 대학생과 은퇴자가 ‘윈윈’하는 관계를 지향한다. 은퇴자가 옛 커리어를 살려 멘토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다.미라벨라는 독립 주거, 생활 보조, 인지능력 관리 총 세 개의 주거 타입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은퇴자는 독립 주거 형태로 거주한다. 집 구조는 침실 1개부터 3개까지 천차만별이다. 혼자 입주하는 사람과 부부 단위로 들어오는 사람에 맞춰 방 형태를 다양화했다. 형태에 따라 월 관리비도 4500달러(약 630만원)부터 1만달러(약 1400만원)로 다양하다. ASU 동문 및 교수진, 동문 부모가 우선권을 가진다.
미국 대학은 UBRC를 단순히 동문에게 주는 혜택을 넘어 평생교육, 세대 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레지던스 전문업체도 다른 사업과의 시너지 등을 염두에 둬 적극적이다. UC버클리, UCLA, UC데이비스 등 캘리포니아주립대는 시니어 레지던스 전문업체 벨몬트빌리지와 손잡고 UBRC를 만들었다. 캘리 스위니 UC버클리 은퇴센터 이사는 “매주 학생과 노인들이 함께 책을 읽는 프로그램의 경우 봉사활동 의지가 큰 학생,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인지능력 장애 노인들 모두 좋아한다”며 “대학교와 연계된 노인 거주 시설을 찾는 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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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 대학 캠퍼스와 연계해 만든 은퇴자 마을. 입주자는 대학 수업과 모임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대학은 캠퍼스 부지를 빌려주고 임대 수입을 얻는다
템피·버클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시니어트렌드]치열한 미국의 시니어 산업⑤ 대학 연계형 은퇴마을
입력2024.07.04 06:10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인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대한 영혼 ‘간디’는 “삶이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따라서 지속적인 학습과 자기 계발 활동은, 생애주기(Life Cycle)상 자연스러운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학 연계형 은퇴자마을’인 UBRC(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가 활발하다. 고령화 사회에서 활력있는 인생 3막을 위해 시니어들은 평생 교육과 풍요로운 커뮤니티를 얻을 수 있고, 대학은 신규 학생을 찾을 수 있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이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한국에서도 UBRC에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과거의 시니어 세대에 비해 교육 수준도 높고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은퇴 후에도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어했다. 대학 역시 학내 도서관 시설을 개방하거나 시니어를 위한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여는 형태를 시작으로, 캠퍼스 부지 내에 시니어 전용 주택을 설치하거나 근교 시니어 타운 입주자들에게 학교 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발전해갔다. 일반적으로 UBRC는 교육 프로그램이 중심이지만, 대학이 이름만 빌려주는 형태부터 대학이 직접 개발, 건설, 운영에 관여하는 형태까지 다양하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UBRC 사례로는 스탠퍼드 대학의 ‘클래식 레지던스(Classic Residence)’, 플로리다 대학의 ‘오크 해먹(Oak Hammock)’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이 사업 주체가 되어 직접 은퇴자 커뮤니티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단,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의료 서비스나 안전, 건강과 관련된 고급 노후 생활 서비스는 대학 재단의 비영리법인(NPO)를 통해 별도로 운영한다. 수익을 통해 학교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커뮤니티 시설 내 봉사활동과 아르바이트를 제공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은퇴한 시니어 역시 수업을 듣거나 교내 시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멘토링을 하거나 세대간 교류를 할 수도 있다. 미국 약 100여개 대학들이 UBRC를 조성해서 운영 중이다.
미국은퇴자연합(AARP)에 따르면, UBRC에 대한 시니어들의 만족도는 대단하다. 베이비부머 세대 시니어들은 골프를 치며 여유롭게 쉬는 것보다 삶에 대한 목적을 갖고, 새로운 것을 하길 원하고 있단다. 특히 배우는 것을 멈추고 싶어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찾으려고 한단다. 이때, 대학과 연결하면 선택권이 풍부해진다고. UBRC 주민들은 평생 교육 수업 외에도 자리가 있을 때면 관심 있는 일반 수업을 청강한다. 캠퍼스 내의 음악 공연, 연극 제작 활동, 체육 행사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은퇴 전의 전문 분야가 연결되는 경우 연구 프로젝트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종종 시니어 주민들이 기존 경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무료로 강의를 제공하는 행사들도 열린다.
유명한 대학 연계 은퇴자 시설로는 비영리 개발업체 퍼시픽 리타이어먼트 서비스(Pacific Retirement Services)가 건설하고 운영하는 미라벨라(Mirabella ASU)가 있다. 실제로 미라벨라가 시행 중인 프로젝트는 준공이 완료되기도 전에 전부 매진됐고, 기존에 운영 중인 대학 관련 은퇴자 커뮤니티들에도 대기자 명단이 있는 곳이 많다고 한다. 최근 프로젝트로는 2020년에 조지아주, 2021년엔 플로리다주, 2023년 가을에는 뉴욕주, 텍사스주를 포함 다수의 지역에서 오픈이 예정돼 있다.
UBRC는 대학에도 유익하다. 국립학생정보센터연구센터(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통적인 연령대의 학생 등록이 지난 10년 동안 400만 명이 감소해왔다. 대학은 대부분 등록금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수익원 다양화가 필수적인 상황이 됐다. 다행히 65세 이상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대학과 연계되는 것을 즐거워한다. 물론 UBRC가 만능은 아니다. 일부 지역의 대학교에서 UBRC에 제공하는 식사에 불만을 가진 거주자들과 관료주의적인 대학교와 주거 사업 법인이 충돌을 빚는 경우도 왕왕 있다.
국내에도 K-UBRC를 선도하겠다며 포부를 밝히는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핵심은 공간이나 시설만이 아니라 차별화된 교육체제,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교류할 수 있는 철학과 운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사례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 출처 : 아시아경제 | https://www.asiae.co.kr/article/2024070314142244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