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는 사회적기업의 자양분이다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 마다 서민의 삶은 더 고달프다. 70년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걸 참고 유보하며 살아온 부모세대들의 고통은 지금도 별 다른 차이가 없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살아야 할 날은 길어졌지만 노후는 준비하지 못했다. 가정 안에서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던 주부들이 이제는 일터로 나오고 있다. 1인가구와 핵가족이 늘어나 가족구조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자본주의라는 우산속에서 나름 열심히 노력해 보았지만 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가져가는 몫이 갈수록 커지면서 소득 불평등과 사회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출발한 것이 사회적 기업이었다.
유럽이나 선진국에서 오래전부터 주민 스스로의 풀뿌리 생활경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사회적경제 였다. 그들은 자기지역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 조직을 만들고 길드(guild)를 형성하여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이 오늘날 협동조합이라는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발전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어서 행정이나 민간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더구나 유럽처럼 오랜 역사적 전통이나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정부는 좋은 생각만으로 정책을 제도화하였다.
2007년에 사회적기업육성법을 만들고 2012년에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것도 부족하여 지금 사회적경제지원법을 만들려고 논의중이다.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자치구마다 조례를 제정하여 재정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일자리창출을 독려하였다. 그 결과 양적인 성장은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질적성장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에서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기본적으로 사회적가치와 양립되어야 한다. 사회적가치 없는 사회적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기업의 존립가치를 형성해주는 자양분이 사회적경제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희망보다는 주민주도의 자발성과 역량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 태동한 사회적경제의 모습들은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이 살고있는 마을단위의 사람들이 살기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소박한 생각이 먼저라는 것이다. 지역주민 스스로 논의하고 문제점을 발견하는 작업부터 해결방안까지 함께 걱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런 과정이 별로 없었다. 할려고 해도 잘 안된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이나 공통적 의사결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회피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와 친밀한 사람과 그들만의 리그전이 되고 만다. 이런 조직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면 갈등과 반목이 시작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도 예산을 낭비하게 되고 지역주민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경험을 통한 학습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과정은 결코 나쁘지 않다. 행정에서도 조급한 성과를 바라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유럽의 사회적경제도 과거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성장하였다. 유사한 사회적경제 제도와 지원 정책들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통폐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제도나 정책이 충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역할분담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실험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담당할 지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신뢰와 공동체적 가치를 학습했다면 결코 실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지역의 마을 만들기에서부터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멀리가려면 함께가라는 말이 있듯이 정부에만 의존하고 말고 함께하려는 생각이 먼저이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적기업은 건강한 사회적경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따뜻한기업 매거진 5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