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사바주의 Givers Mart

changebuilder 2009. 6. 16. 11:06

서울에서 내 강의를 수강했던 학생들의 요청이 많았지만 거절하는 것도 분위기에 맞지않다는 생각이 들던 턴에 연수 일정표를 보니 사회복지 연수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아 급히 연락을 취하였다. 장소를 바꿀수는 없어도 의미있는 사회복지시설이나 기관을 수소문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모두들 먼저 하는 한마디는 여권 가져 왔는지 였다. 작년의 악몽 때문에 여권은 미리 챙겨두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본 코타키나발루는 ‘영혼의 안식처’ 라는 뜻이었다. 자연 환경도 태풍이 발생하는 필리핀 해  아래쪽에 있어 ‘바람 아래 고요한 땅’이라 불린다. 코타키나발루는 보르네오 섬 북단을 차지하고 있는 사바(Sabah) 주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우리 연수단은 5시간 정도를 비행하여 밤 11시가 넘어서야 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소개된 가이드를 따라 버스로 40여분 달려 넥서스리조트(www.nexusresort.com)에 여장을 풀고 방 배정을 받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거실창문에 참새들이 날아와 바닷가 파도소리에 맑은 햇살이 찬연했다. 어제밤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밖을 보니 6㎞에 걸친 모래사장에 탁트인 바다와 야자수 숲속의 빌라와 건물은 그림속의 장면이었다. 넥서스 리조트는 가장 규모가 크고 풍광도 뛰어나며 화이트비치와 잘 꾸며진 열대정원을 갖추고 각종 해양레포츠, 해변의 승마, 수영, 스파, 골프 등을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가족휴양지였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마무틱(mamutik)섬에서 수영과 낭만적인 여유를 즐기느라 모두들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도 숲속의 야외 뷔페 형태로 맛있게 먹었는데 놀라운 것은 너무나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모래였다. 우리나라에는 알려진지가 얼마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관광객은 많지 않았고 너무나 여유로운 곳이었다. 간혹 유럽 관광객이 보일뿐 대부분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패러세일링은 배를 타고 낙하산을 띄워 공중을 나는 쾌감은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였다. 맑은 바다와 낭만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시내로 와서 발맛자시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오후 4시경 우리는 어렵사리 수소문한 이철동 목사님을 기다렸다가 버스로 함께 기버스마트(givers mart)로 이동하였다. 목사님은 14년동안 말레이시아에서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운영하면서 한국에서 헌옷을 기증 받아와서 나누어주거나 판매하여 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설명을 듣고나니 우리가 사회복지연수는 선진국만을 생각했는데 이런 곳이 정말 우리에게 가슴 뭉클하고 뭔가 해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www.kfhi.or.kr) 말레이시아 지부장이면서 눔막 소망학교, 사바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는 목사님의 이상과 철학에 감동하였다. 기버스마트의 공간은 2층에 허술한 공간이지만 다양한 의류와 생필품들이 진열돼 있었고 무료로 임대해주었다고 하시면서 기아자동차도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국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잘 사는 나라여서 필리핀이나 태국 등지에서 넘어오는 불법체류자 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한다는 것이며 그들 가족과 자녀들은 수상가옥에서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곳에 자원봉사활동이 많이 왔으면 하는 얘기를 목사님과 나누고 새로운 세상의 삶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 순간 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코타키나발루 시내로 다시 들어서니 어느덧 따가운 햇살이 누그러져 해변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저녁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며 보르네오 섬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을 무렵 일행 모두는 해변가 모래사장에 모여 어린아이들 마냥 장난도 하고 온갖 게임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게임에 진 팀은 옷 입은 그대로 바닷가에 잠수하는 것을 반복하였다. 나 역시 예외없이 물속에 빠지기를 여러번 하면서 모두들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2009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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