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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비즈니스와 일본농촌

changebuilder 2009. 6. 8. 19:12

아침에 일어나기도 전인데 공무원이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우리가 안내된 곳은 마을 인근의  Marguerite Station(www.aito-ms.or.jp)이란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자연농원과 같은 곳인데 10만평 정도 규모로 전원생활관, 식물원, 놀이동산, 체험관 등 유럽 전원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정식 명칭은 滋賀農業公園(www.blumenooka.jp)인데 운영자는 주식회사 팜이었다. 10여년전 일본의 호황기 개발붐 때 만들어진 것인데 애물단지란 느낌이 들었다. 개발당시 정부나 지자체가 유도하여 50%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어서 일본전역에 이런 시설들이 천개이상 적자상태라는 것이다. 여기도 시설은 대단히 훌륭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영하는 주식회사는 보통 제3섹터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비영리 형태로 우리나라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좋은 사례라 생각되었다. 인위적으로 개발하여 모든 것을 이 안에서 해결하도록 한 것이 오히려 적자가 되고 자연을 파괴했다는 교훈 때문에 그린투어리즘이나 마을가꾸기, 지산지소 운동이 일어나게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연구원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정리되지 못하고 개발과 자연이 모두 혼재되어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하고 다음 목적지인 池田牧場(www.ikeboku.com)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사람 흔적은 있는데 폐농이 되어있어서 물어보니 이전했다고 한다. 시골 마을을 돌아 물어서 찾은 곳은 뜻밖에도 깊은 산속에 전원 레스토랑이었다. 목장은 다른데로 이전하고 여기는 2003년에 신축했다고 한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나서 주인아주머니(池田喜久子)로부터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1950년 소 2마리로 시작한 목장은 1970년 40두, 1980년 80두로 늘어났으나 1983년 수요공급이 맞지않아 0.5톤의 우유를 버려야하는 아픔을 겪으며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고 해서 소를 60두로 줄였다는 것이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우유를 가공해 판매할 생각으로 치즈, 병우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중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아이스크림이었다고 한다. 그당시 일본은 고지방 우유가 인기였고 저지방 우유는 별로 안먹는 터라 뉴욕의 아들이 알려준 정보로 저지방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젤라또를 만들기 위해 직접 이탈리아까지 가서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적중하여 매출이 급증하고 흑자로 전환되어 2003년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는 것이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면 도로변에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망설였지만  결국 농촌과 자연을 있는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산속으로 결정했는데 처음엔 적자였고 마을 사람들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농민을 이해하기 위해 160년간 살았던 집을 옮겨와 의미있게 인테리어도 하고 나중에 사슴고기 요리도 개발하여 철저히 지산지소(이지방 생산물로 음식을 만듬)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 시골부부의 생각이 자연을 보존하게 되고 농촌과 농부를 느끼게 하여 이 산속까지 젤라또를 먹기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작게는 20명에서 많게는 1,200명까지 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식당간판도 “시골의 친척(田舍の 親戚)”이었다. 아주머니가 어렸을때 사용한 유모차, 연필, 지우개, 삼각자, 아저씨의 어릴때 책상등이 비치되어 시골 외할머니집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하였다. 지금은 유한회사로 성장하였고 딸 부부가 가업을 잇기위해 후계수업으로 젤라또를 제조하고 판매하며, 우유생산은 아저씨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 목장은 일본의 地産地消운동과 그린투어리즘의 사례로서 배워야할 곳이었다. 지산지소는 전국적인 협회 차원에서 회원으로 등록하여 관리되고 있음을 알수 있었는데 출입문 입구 등에 별이 4개 그려져 있었다(www.midori-chouchin.jp). 이것은 80%이상을 이지역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표시이고 각 업소별로 조사하여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이 아주머니의 말에 감동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남선녀들이 데이트를 즐기며 산속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위해 연신 비탈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아쉬운 이별과 함께 산속을 내려와 이번 연수의 하이라이트인 東近江市의 농사조합법인(www.bcap.co.jp/manyonosato)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을 맞아준 사람은 이지역 공무원이면서 이 마을의 주민이며 조합법인의 조합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福井建次, 후쿠이상).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우리를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고 한다. 사무소로 안내하더니 준비된 프리젠테이션으로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제목은 「万葉の 鄕 ぬかづか」인데 아스카시대 귀족의 로망스가 소재로 되었던 책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마을의 총 농가호수는 23가구(낙농 6가구, 양 1가구)가 살고있는데 7가구가 전통적인 전업농인 마을이다. 이 마을의 농지면적은 30㏊, 조합원 30명, 이사8명, 감사 2명으로 구성되었다. 조합의 조직은 총무부, 영농부, 사료작부, 가공부, 직매소로 구성되어 전직원이 조합원이며 이 마을 사람들이다. 처음 조합을 설립할 때는 경지정리 보조금, 강이나 대토자금, 도로정비자금, 합병보조금, 주택보조금 등으로 자본을 마련하였고 개인출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운영방법으로는 자기 농지를 용지이용개선조합(농사조합법인이 실지로 임대하는 형식으로 대금 지불 )에 위탁하면 법인이 마을의 모든 농사를 짓는 것으로 일종의 위탁영농이나 대리경작의 방식이었다. 자작농도 있지만 농사를 짓기 싫은 농가는 모두 맡기고 임대료만 받든지 아니면 법인에서 일하며 종업원으로서 급료를 받는다.

이 작은 마을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자연농업(농약사용 이력제 표시 부착)을 실천한다는 것이며 노인들에게는 소득을 보장받게 해주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흔히 community business를 “얼굴이 보이는 경제”라고 표현하듯이 내가 생산한 쌀이 소비자에게 평가받고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농협에 출하하면 농협이 평가되고 운영주체가 되지만 농민이 직접 생산하고 농사조합을 통해 직접 출하하면 보람도 느끼고 소득도 얻는 주인 구조였다. 영농부에서는 직접 농사(이앙기 2대, 콤바인 등)를 짓고 가공부에서는 쌀가루를 빻아 쌀로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었다, 농촌 노인들이 기술을 어떻게 익혔는지도 궁금해서 물어보니 다른 지역(니가타현) 전문가한테 파견 보내 기술을 배워왔다는 것이 대단했다. 밀가루 빵이 아닌 쌀을 가공한 각종 제품이 인기를 얻어 인근 공공기관이나 유치원, 학교급식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료작부는 농산물의 부산물이나 사료를 제작하고 퇴비로도 사용하는 방식이며 직매소가 흥미로웠다. 우리나라 도시 도로변이나 재래시장 모퉁이에서 작은 보따리를 벌려놓고 장사를 하는 시골 할머니를 가끔 보게된다. 과연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 팔수는 있을까 걱정되기도 한 기억이 있어서 여기서는 어떤 방법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에선 고추나 오이 등 농촌 노인들이 수확한 소량의 불량품이나 기형적인 제품은 팔지도 못한다. 그런데 여기선 그런 물건들을 아무리 소량이라도 모두를 믿고 구입하며 직접 직매소에서 유통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량 다품종의 농산물을 생산한 시골 노인들이 즐겁다는 것이며 일할수 있어서 건강도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 지역 농산물을 믿고 살수 있고 스스로 소비하는 지역운동이란 것이 지산지소로 나타난 것이다. 수,목,토,일요일에만 직판이 열리며 인근 도시에서도 구매하러 온다는 것이고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농가도 소비자도 자극를 받아 신뢰가 쌓이고 지역간 교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논도 탁수를 흘려보내지 않고 가둬놨다가 땅에 스며들도록하는 환경농업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조합의 목적은 소득증대도 중요하지만 농촌을 유지하고 계승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을이 성공하면 청년들도 유입될 것이라 믿고 있었으며 이런 사업으로 나타난 효과는 더욱 대단했다.

첫째로 시집온 젊은 며느리들이 좋다는 것이다. 농사를 조합에 맡기고 짓지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이지역에 사는 비농가들이 조합원가격으로 쌀과 농산물을 구매하므로 지역에 이익이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노인들의 생활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소량을 생산해도 판매할 곳이 생겼고 돈을 벌수 있어서 손자들에게 용돈을 줄수 있다는 것이다. 천대받는 노인들에게 정체성과 역할이 부여된 셈이다. 우리들이 이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농촌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영국의 전원마을에서 가족만의 의자를 만들어 이야기가 있는 전통적인 유산을 만들었던 사례에서부터 시골 노인들이 나뭇잎을  따다 소득을 올리는 것까지 외국의 농촌운동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되어 더욱 가슴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다시 우리가 오사카 시내로 들어오는 차안에서 오차장님과 강연구원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일본의 사례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평가회를 따로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기 주장들이 이어졌지만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정리하면서 들었다. 무언가 보인다는 느낌을 하는순간 어느덧 해가 기울어 호텔(www.hyattregencyosaka.com)로 들어왔고 강연구원과는 헤어지게 되었다. 저녁 식사후 술한잔을 하기 위해 호텔밖으로 나왔다. 바로 연결된 통로에 WTC(World Trade Center)와 ATC(As ia and pacific Trade Center)가 있고 빌딩 숲이지만 술집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고 초저녁인데도 별로 사람들이 안보였다.  겨우 옆에 있는 선술집에서 알지도 모르는 안주와 술로 오사카의 밤을 만끽하였다.   

2009년 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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