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Policy

위험한 사회 1

changebuilder 2008. 11. 30. 22:29
 

[‘위험한 사회’ 대한민국] 위험도 조사 이렇게 했다 [중앙일보]

무작위로 뽑은 성인 1002명 일대일 면접

중앙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중앙대 차세대에너지안전연구단이 공동 기획한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조사’의 주제어는 ‘위험’이다. 과거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먹고사는 것이었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요즈음에는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양질의 삶을 위해서는 각종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수다. 특히 올해는 금융위기, 광우병 파동,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등 대한민국이 각종 위험에 시달렸다.

이번 조사는 이런 사회적 변화를 감안해 위험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안전한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파악해 봤다. 조사는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002명을 한국갤럽의 조사원이 일대일로 면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대상은 시·도별 인구수에 비례해 층화(層化) 무작위 추출로 표본했다. 조사기간은 8월 12~24일이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 포인트.

국민 10명 중 7명 “한국은 위험한 사회” [중앙일보]

본지·서울대·중앙대 공동 성인 1002명 조사
실업·빈곤, 고유가, 먹거리 순 꼽아
“국가·기업·개인 모두 위험 관리를”

한국인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위험의 근원은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글로벌 금융위기뿐이 아니다. 빈곤과 재난의 위험은 줄었다. 대신 20년 전만 해도 상상치 못했던 사생활 침해, 사이버 범죄, 신종 질병과 같은 새로운 위험이 한국인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를 ‘근대화가 극단적으로 실험된 데다 최첨단 정보사회의 영향이 중첩된 특별히 위험한 사회’로 규정했다.

한국인의 위험은 일상과 맞닿아 있다. 대구 방촌동 김세환(27·레미콘 품질 관리사)씨 부부에게 딸 해별이(3)는 기쁨이자 걱정거리다. 맞벌이라 어린이집에 보내는 낮 시간을 빼면 아이에게서 눈을 떼는 일이 없다. 이름과 주소가 새겨진 목걸이와 팔찌를 채우고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목욕하면서 성교육도 시키지만 아동 범죄 뉴스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모르는 아저씨 따라가면 다시는 엄마 못 본다” “전기를 만지면 하늘나라 간다”는 식의 겁도 줘 본다. 얼마 전 중국산 멜라민 사태가 터졌을 때는 아이가 먹는 모든 식품의 성분을 따지느라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엄마 김현숙(28)씨는 “해별이가 좀 더 크면 위치 추적이 가능한 GPS 시스템을 달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사교육비도 문제다. 둘째를 둘 계획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꿈의 기술 ‘유비쿼터스’와 인터넷의 보급은 편리함과 동시에 신종 위험의 발원지가 됐다. 가장 뛰어난 보안 프로그램조차도 신종 바이러스와 해킹, 스팸메일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이재열(사회학) 교수는 “성장을 위해 나머지를 희생하던 개발 독재의 시대가 지나가고, 물질적인 풍요뿐 아니라 삶의 질과 안전한 삶에 대한 욕구가 늘면서 위험·불안이 일상화됐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소장 정진성 교수·사회학), 중앙대 차세대에너지안전연구단(단장 윤기봉 교수·기계공학)이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4%가 우리 사회를 ‘위험한 사회’라 답했다. 응답자들이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대처해야 할 위험으로 꼽은 것은 ‘실업 및 빈곤’(23.8%)이었다. 고유가 시대(10.9%)와 먹거리 위험(8.8%), 노후 불안(8.1%)이 그 뒤를 이었다. 10년 뒤 사이버 범죄와 사생활 침해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도 81%나 됐다. 결혼과 출산 등 통과의례로 여겨지던 일도 높은 이혼율, 집값·사교육비 폭등과 맞물려 새로운 위험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는 사회적 안전망에는 구멍이 많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 근로자는 90.9%가 국민연금에 가입했지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가입률은 38.7%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험, 건강보험 가입률도 각각 49%, 44.6%에 머물고 있다.

개인의 위험을 줄이려는 국가 시스템도 부족하다. 김중구 교수(서울디지털대 경영학부·NH투자증권 전무)는 “선진국에 비해 공공지출이 적은 한국의 국민은 혼자 힘으로 위험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라며 “국가·기업·개인 모두가 위험(리스크)관리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김은하·이정봉 기자

◆위험사회=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1980년대 중반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와 현대인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새로운 위험을 동시에 몰고 왔다고 지적했다.

 

[‘위험한 사회’ 대한민국] ‘위험 네트워크’ 전문가 진단 [중앙일보]

현대사회 ‘혈관’ 항공망·송전로·인터넷…
자칫 잘못 터지면 글로벌 재앙 원천으로

과거 우리가 경험하고 익숙했던 위험은 태풍·홍수 같은 자연재난이나 건물의 붕괴 같은 인위적 재난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가 만든 문명의 이기가 또 다른 위험의 원천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총아는 네트워킹 기술이다. 웬만한 사람이면 지구 어디서나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통해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뿐 아니라 지구를 뒤덮은 항공망, 그물처럼 얽힌 해상 원유 수송로,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에서 각 가정과 거리의 가로등을 이어주는 송전로, 지하를 채우고 있는 가스관과 하수도관처럼 우리 생활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인 기반시설들의 공통점은 모두 네트워크라는 점이다. 네트워크는 연결을 상징한다. 떨어져 있는 시골의 할머니와 도시의 손자녀를 연결시켜 주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망은 고맙기 그지없는 존재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어느 한쪽에서 발생한 위험이 엄청난 피해를 낳기도 한다. ‘네트워크 도미노’라는 재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2003년 나이애가라 폭포에 떨어진 벼락은 북미 동부지역의 전력망을 일거에 마비시켜 수천만 명을 전기 없는 문명 이전의 시기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한 정보기술은 유비쿼터스 사회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어느 날 나의 ▶의료기록 ▶신용정보 ▶교통카드 승하차기록 ▶휴대전화 통화내역 ▶신용카드 구매사항들이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단숨에 꿰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자연 분해되지 않고 펄펄 살아서 돌아다니던 디지털 정보 쓰레기들이 어느 날 한 데이터마이닝(자료발굴)의 천재에 의해 순식간에 연결되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글로벌하게 연결된 파생상품의 연쇄고리가 한꺼번에 연쇄부도를 가져온 자본주의 심장부의 혼란이나, 철새를 따라 움직이는 조류 인플루엔자(AI)의 놀라운 이동성, 억척스럽지만 사랑받던 한 연예인을 자살로 몰아간 인터넷의 주홍글씨…. 이런 사례는 네트워크가 편리함과 효용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돌발적 위험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피할 수 없는 위험이라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안전기술을 확보하고 사회 규범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네트워크의 위험 관리는 창의성이 꽃필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비해야 하는 최우선 과제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

 

자기계발·건강 아직은 ‘작은 위험’… 대비 안 하면 큰 위험 된다 [중앙일보]

[‘위험한 사회’ 대한민국] 건보공단 이근하 대리 살펴보니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하다.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사회일수록 더 그렇다. 현재 안전하다고 해서 미래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위험관리전문가인 서울디지털대학 김중구 교수(NH투자증권 전무)가 회사원 이근하(37)씨가 안고 있는 위험과 취약점을 분석해 봤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대리인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12년 전 현재 직장에 입사했다. 회사원인 부인 심미희(34)씨와 초등학생인 딸(10)·아들(7)과 수원에서 살고 있다. 1억7000만원의 23평형 아파트를 갖고 있으며 부부의 연봉을 합친 수입은 7000만원 정도다.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직장까지 출퇴근한다. 평일에는 오후 9~10시나 돼야 집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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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안정된 직장에 저축 꾸준히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엔 위험 관리 ‘취약’


이근하씨는 금융위기에 이은 경기 침체를 걱정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두었다고 자신한다. 이씨는 “평소 꾸준히 저축을 하고, 노후에 대한 계획도 세워 놓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수원에 집을 소유하고 있고, 연 7000만원의 수입 중 1200만원을 안전성이 높은 적금이나 개인연금에 넣고 있다. 그의 직장은 공공기관으로 정년이 60세다. 조기 퇴직이나 실직의 위험이 다른 사람에 비해 적다. 퇴직 후에는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충남 보령)에 내려가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전문가의 진단은 이씨가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김중구 교수는 “이씨의 현재 생활은 안정적이지만 미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평가 결과 이씨의 위험관리 성적은 1(아주 낮음)~5(높음) 중 2.4인 ‘보통 상태’였다. 문제가 생기면 ‘취약상태(3.0)’로 넘어갈 수 있는 경계선에 있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

위험평가는 금융권에서 사용하는 위기관리 모형을 이씨 개인의 재무 위험과 비재무 위험(가족·건강·전문성·노후준비 등)에 적용했다. 점수는 이씨가 실제 가지고 있는 위험의 ‘규모’와 ‘관리 수준’을 합쳐서 산출했다. 즉 미래에 어떤 큰 위험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더라도 관리나 대비가 잘돼 있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은 위험’이라도 전혀 대비가 없다면 ‘큰 위험’으로 본다. 이씨가 가진 위험의 규모 점수는 2.4였으며 관리수준은 2.45였다.


김 교수는 "현재 이상이 없더라도 가족관계나 중년 위기에 대한 대비는 필수적”이라며 “10년 뒤의 자산과 비용을 감안해 미래를 계획하고 건강 이상, 전문성 부족 등 잠재적인 위험을 무리 없이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