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Solidarity Economy

사회적기업이 희망이다 3-3

changebuilder 2008. 8. 25. 12:47

[‘사회적 기업’이 희망이다]Ⅲ-(3)새로 태어난 슬럼가-BBBC
입력: 2007년 10월 28일 17:36:38
 
-런던 달동네의 이민자들 스스로 ‘복지’를 일구다-

영국 런던의 35개 구(區) 중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브롬리 바이 보(Bromley By Bow)’에선 영어 다음으로 흔하게 듣는 말이 방글라데시어다. 주민 1만5000여명 가운데 42%가 방글라데시 출신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와 중국, 폴란드, 알바니아 등 다른 지역 이민자도 20%를 차지한다. 각양각색의 인종이 모여 살다보니 이곳에서 쓰이는 언어는 60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영어를 못하고 피부색까지 다른 이민자는 취업이 어렵다. 이 지역의 실업률은 영국 평균보다 3배 높은 12%다. 3대에 걸쳐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는 가정이 있을 정도다. 실업은 빈곤을 낳는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실업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엔 역부족이다.
BBBC 자원봉사자와 장애인 주민들이 운동치료 수업에 참가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런던/최희진기자

‘브롬리 바이 보 센터(BBBC)’는 정부 복지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주민들이 설립한 단체다. 센터 활동은 1997년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영국 최초의 민간 보건소를 세우면서 본격화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의료시설 하나 없던 동네였다.

보건소 건립이 성공하자 주민들은 삶의 질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주민들은 BBBC를 중심으로 어린이집 운영과 장애인 재활치료, 실업자 직업훈련 등 복지 프로그램을 개발, 시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만 해도 무려 120여가지에 이른다.

BBBC의 활동 범위가 넓어져도 주민 자치라는 운영 원칙엔 변함이 없다. 평생 회비 1파운드만 내면 누구든 회원이 될 수 있다. 대표는 회원 중에서 투표로 선출한다.

BBBC를 방문한 날도 건물 곳곳에서 주민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음악과 웃음 소리로 떠들썩한 곳은 장애인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치료반이다. 몸은 비록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서로 손을 잡아주고 의지하면 율동을 따라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BBBC에 자원봉사를 하러 찾아온 금융회사 ‘크레디트 스위스’ 직원들이 지역 초등학교에 기증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런던/최희진기자
BBBC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도 끊이지 않는다. 이날은 금융회사 ‘크레디트 스위스’의 직원들이 작업실에 모여 서툰 솜씨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동네 초등학교에 환경 미화용으로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의미 있는 활동도 재정이 받쳐주지 않으면 지속되기 힘든 법이다. 과거 센터는 정부 지원금과 뜻있는 독지가들의 기부금에 의존해 왔다. 보건소는 정부 지원금을 받기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다른 프로젝트들이었다. 지원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해도 2~3년치 이상은 힘들었다.

주민들은 스스로 벌어 BBBC의 재정을 충당하기로 결정했다. 지속가능한 복지 서비스의 경제적 토대는 종국엔 사회적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주민들은 2002년 바클레이스 은행에 조언을 구해 BBBC가 하고 있던 프로그램 중 ‘돈 되는 것’을 골라냈다. 당초 지역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시작했던 정원 관리와 목공 수업 등 5개 프로젝트는 이렇게 해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됐다.

주민들은 기업의 관리자와 종업원 역시 이웃 주민 중에서 선발했다. 지역 실업문제 해소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였다. 가구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차이(29)도 BBBC 덕분에 ‘백수’ 신세에서 탈출한 경우다. 그는 “납품 기일이 다가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서도 “여기에 취직한 이후로 손재주도 살리고 돈도 벌 수 있게 돼 매우 좋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사회적 기업의 수익 중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BBBC 운영에 재투자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첫해 매출 50만파운드(약 9억5000만원), 이듬해엔 100만파운드(약 19억원)를 기록했다. 현재 BBBC 자본금 350만파운드(약 66억5000만원)의 약 26%인 90만파운드(약 17억1000만원)가 사회적 기업에서 나온 것이다.

주민들은 사회적 기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환경 개선 사업을 실시했다. 황량한 공터를 멋진 놀이터로 단장해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된 것도 사회적 기업 덕분이다. 주민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아이를 기르는 이 곳에 ‘공동체의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없다. BBBC의 상근직원 폴 쇼는 운영의 비결을 묻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주민들은 내년 초 사회적 기업 17개를 추가로 열 계획이다. 이들 사회적 기업의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브롬리 바이 보’의 공동체 운동은 더욱 단단하게 여물어 갈 터이다.

〈런던|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사회적 기업’이 희망이다]160년 역사…사회적기업 5만5000개
입력: 2007년 10월 28일 17:36:30
 
‘브롬리 바이 보 센터(BBBC)’와 같은 지역 공동체 운동은 사회적 기업 중에서도 협동조합(Co-operatives)으로 분류된다. 특히 영국의 협동조합은 그 시초가 1844년 설립된 ‘로치데일 조합’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깊다.

지금도 영국에선 지역 사회의 필요를 주민 손으로 직접 해결하는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다. 이 가운데 ‘코인스트리트 공동체 건설(CSCB)’은 런던의 지도를 새로 그리게 한 곳으로 유명하다.

CSCB는 템스강 남쪽 강변을 일컫는 사우스뱅크에서 출발한 단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우스뱅크는 살 만한 동네였다. 그러나 도시정비사업으로 주민들이 템스강 북부로 대거 이동하면서, 5만명이었던 인구는 4500명까지 줄었다. 사람이 떠나고 학교와 상점이 문을 닫자 동네는 점점 황폐해졌다. 남은 주민들은 ‘지역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주택을 더 짓고 상점을 개업하는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84년 CSCB를 창립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지역 개발에 착수했다. 버려진 건물을 부순 뒤 강변 공원을 만들었고, 최신식의 주상복합건물을 지었다. 오늘날 관광 명소가 된 다목적 상업공간 ‘옥소타워 워프’와 ‘가브리엘스 워프’가 모두 CSCB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CSCB는 여기서 나오는 임대 수익으로 주택을 건축, 저소득층에 공급하는 ‘사회적 주택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50㎞ 떨어진 레스터에 위치한 ‘아쿤 공동체 교육서비스(ACETS)’도 공동체 운동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사회적 기업이다. 레스터는 내전을 피해 도망친 소말리아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대부분 영어를 할 줄 몰라 영국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같은 어려움을 지켜보던 소말리아 출신 주민 5명은 2003년 새로 도착하는 이민자, 특히 어린이를 돕고자 ACETS를 세웠다. ACETS는 8~12세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는 방과후 학교와 주말 보충수업, 숙제방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던 어린이들은 ACETS 덕분에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이처럼 공동체 운동이 지역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자, 영국 정부도 이를 육성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기업 연합(SEC)’을 세워 영국의 5만5000여개 사회적 기업에 대해 물적·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엔 사회적 기업을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 25명을 임명하기도 했다. SEC 대표 조너선 블랜드는 “사회적 기업은 21세기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혁신적인 사회적 기업들은 경영과 기업 활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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