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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10년 -7

changebuilder 2007. 11. 4. 13:39

<換亂 10년> ⑦동남아 국가들의 현주소


(방콕=연합뉴스) 전성옥 특파원 = 10년 전 외환위기는 동남아에서 경제 뿐 아니라 정치 판도마저 변하게 했다.

1997년 7월2일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시작된 태국발 외환위기는 한국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쓰나미'처럼 휩쓸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동남아 국가는 환란의 고통을 딛고 과감한 개혁과 신중한 재정운용, 수출 및 외국인 투자 중시 정책을 통해 예전보다 강하고 안정적인 경제의 틀을 만들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진원지인 태국의 경제 회복은 외국인직접투자(FDI)의 급증과 증시 활황이 잘 보여주고 있다. 태국의 작년도 FDI는 모두 79억달러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태국 주식시장의 SET지수는 지난 7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800선을 넘어섰고 외국자본의 꾸준한 증시 유입으로 태국통화인 바트화(貨)의 가치도 10년래 최고치를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외환위기는 정치판마저 변하게 했다.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해온 수하르토는 1998년 5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수개월 전 외환위기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국제전략연구소의 유수프 와난디 부회장은 "수하르토는 부패에도 불구하고 매년 8~9%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며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으나 외환위기로 고도성장은 더 이상 불가능했고, 국민은 쉽게 그를 제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동남아는 아직도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데다 미래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또다시 제2의 환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태국은 작년 9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쳤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야 했으며 군부가 내세운 과도정부는 '경제 애국주의'에 사로잡혀 잇단 규제책을 내놓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태국 재무부는 지난 6월 올해 GDP 성장률을 4.0~4.5%에서 3.8~4.3%로, 중앙은행(BOT) 역시 당초 4.0~5.0% 성장에서 3.8~4.8%으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경제성장률 둔화 전망은 쿠데타로 인한 정치 불안, 외환규제 및 외국기업법 개정으로 투자환경이 악화한데다 남부 이슬람지역 소요사태 등으로 정치.경제.사회적인 불확실성이 심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04년 대선에서 반부패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으나 부패 방지를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여전히 받고 있는 실정이다.

말레이시아도 외환위기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분석가인 테렌스 고메즈는 "중앙정부의 권력집중과 상장기업에 대한 통제 등 마하티르 정부 시절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도 하원이 지난달 12일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에 대해 부패 혐의로 2005, 2006년에 이어 세번째 탄핵을 제기하는 등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미래에 대한 투자 부족도 동남아 국가가 안고 있는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다.

세계은행(WB) 태국담당 경제학자인 키리다 바오피칫은 "태국이 혁신적인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FDI나 외국 브랜드의 생산 공장에서 탈피해 교육 및 연구(R&D), 기술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국 동남아연구소의 가이 포레 국장은 "한국, 대만, 중국은 과학과 기술 분야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동남아에서는 싱가포르만이 R&D에 중점 투자하고 있을 뿐이다. R&D 투자 부족은 동남아 국가가 안고 있는 공통적 문제점"이라고 진단했다.

sung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