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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10년-4

changebuilder 2007. 11. 4. 13:36

<換亂 10년> ④증시, 자본시장 꽃으로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20년 가까이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한 앨런 그린스펀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 <격동의 시대>에서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를 '충격적인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계 경제 동향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는 그였지만 경제규모가 세계 11위이며 외환 보유고가 250억달러에 달하는 한국이 외환위기의 재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외환 보유고를 속여 왔다는 사실을 안 그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국에 배신감을 느낀 외국인은 그린스펀 뿐만이 아니었다. 기아차 등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위기로 외환위기의 전조가 나타난 1997년 7월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을 연일 내다팔기 시작했다.

외국인 매도 여파로 1997년 12월3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합의 당시 코스피지수는 이미 379.31까지 떨어진 상태였으며 다음 해 6월16일에는 280.00까지 추락했었다.

이후 10년 동안 한국경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했으며 주식시장은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 증시는 2003년 3월부터 점진적인 경기회복과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대세 상승기를 맞아 급기야 올해 7월에는 사상 최초로 2,000선을 돌파하며 새 이정표를 세웠다.

◇코스피지수 280에서 2,000까지

외환위기 직후 붕괴됐던 주식시장은 정보기술(IT) 거품시대를 거쳐 올 들어 코스피지수 2,000 시대를 열었다.

1999년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딛고 빠른 속도로 회복세를 보이자 주식시장도 급등세로 돌아섰지만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경기회복에다 정보기술(IT) 투자열풍이 겹치면서 코스피지수는 그해 1,005.98까지 뛰어오르며 역사상 3번째로 1,000선을 넘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인 IT 거품 붕괴에 카드대란과 건설경기 과열 후유증 등이 겹치면서 한국 증시는 다시 추락하기 시작한다. 2001년 8월23일 한국은 IMF 관리체제를 공식적으로 졸업했지만 당시 지수는 570.07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그해 9.11테러로 세계 증시가 폭락하면서 지수는 400대로 주저 앉았다.

주식시장의 대세 상승이 시작된 시기는 2003년 3월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계경제 침체 여파로 허덕이던 국내 증시는 저금리와 점진적인 경기회복에 힘입어 서서히 오름세를 타기 시작해 이후 4년여 동안 거침 없이 상승했다.

2003년 3월17일 515.24로 마감한 코스피지수는 이후 우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급기야 2,000 시대를 연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60조원대로 추락했던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천100억원대로 17배 이상 커졌으며 상장 종목수는 98년 말 1천275개에서 1천922개로 늘었다.

◇증시, 질적 성장도 `뚜렷'

한국 증시는 IMF 이후 양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재고되면서 기업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문화도 '투기'에서 '투자'로 변모하고 있다.

워런 버핏은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경제에 문제가 많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상당기간 지나치게 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며 "이후 한국 정부와 개별 기업의 노력을 통해 기업의 재무구조와 투명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기업정보 공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매매 형태도 직접 투자에서 간접 투자로, 단기투자에서 중장기 투자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간접투자가 활성화되면서 2001년 70%대에 달하던 개인의 주식 매매비중은 작년과 올해는 40~50%대로 낮아진 반면 기관의 매매비중은 2001년 14%에서 작년 말 기준 20% 수준으로 올라섰다.

주식형펀드 수탁고(국내외 포함)는 2001년 말 6조9천192억원에서 지난 달 31일 기준 94조5천520억원으로 무려 13.7배로 늘었다.

10년 이상 증권사 지점에서 근무한 한 직원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증권사 지점 객장을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따블', '따따블'을 노리고 왔으나 요즘에는 대박을 기대하는 투자자보다는 현실적인 목표수익을 설정하고 중장기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또 외환위기 이후 환매조건부채권시장 및 개별주식옵션시장(2002년), 상장지수펀드(ETF) 시장(2002년), 스타지수 선물시장(2005년),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2005년), 엔화선물 및 유로화선물 시장 등 다양한 파생상품 시장이 줄줄이 생겨나 투자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이제 옛말

국내외 투자자들은 과거에 비해 국내 우량 주식의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한국 주식이 여전히 다른 나라 증시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어 추가상승여력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달 25일 한국을 첫 방문한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불과 몇 년 전까지 한국 주식은 터무니없이(ridiculously) 싸게 거래되고 있었으며 여전히 세계 대부분의 증시와 비교했을 때 저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 투자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한국 주식을 상당부분 처분했지만 한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와 기업들의 낮은 주가이익배율(PER)을 고려할 때 한국 증시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증시의 주가이익비율(PER)은 12배로 세계시장 평균 PER 14배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다. 박효진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도 "현재 한국 증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12배 초반 수준의 주가이익비율(PER)과 15% 내외의 꾸준한 자기자본이익률(ROE), 다양한 업종 구성, 아시아 내수성장의 수혜 업종 집중, 외국인 투자관련 제약 조건 철폐, 자산배분에서 근원적 수급 변화 등이 진행 중인 시장이 바로 한국 증시라는 것이다.

◇ 자본시장 첨병으로 진화 중

증권시장의 체질 변화와 함께 자본시장의 첨병인 증권사들은 주식위탁매매(브로커지리)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천수답(天水沓)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 자본시장통합법의 국회통과를 계기로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투자은행으로의 변신노력은 ▲자기자본 확대 ▲IB 및 자산관리 부문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 ▲해외 자본시장 진출 및 직접투자 ▲인재유치 및 양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증권사들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자기자본 규모를 최대 5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며 우수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대표이사(CEO)가 직접 나서 해외 취업설명회를 열고 있다. 특히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베트남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시장에 진출, 부실채권 인수와 부동산 투자, 인수.합병(M&A)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투자자에게 종합적인 '금융솔루션'을 제공하는 투자은행의 육성은 국내 금융시장 발전에도 필수적인 과제로 꼽히고 있다.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을 마련해 투자은행 육성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향후 금융업은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특히 금융업 내에서 은행 중심의 간접금융보다는 증권시장 중심의 직접금융의 비중이 커지고 있으며 파생상품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증권시장의 첨병인 증권사를 투자은행으로 육성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에 있어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