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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10년-2

changebuilder 2007. 11. 4. 13:33

<換亂 10년> ②구태 못 벗은 은행 경영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 환란의 원인제공자 중 하나인 은행에 학점을 준다면 얼마쯤 될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C학점 정도로 평가된다. 자산건전성과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됐지만 은행들이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겉모습은 멀쩡해졌지만 실력 측면에선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공적자금 덕분에 외형 개선

은행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결과 성장성.수익성.건전성 측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은행권의 자산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말 421조원에서 2006년말 1천262조원으로 3배 규모로 늘어났다. 순이익은 10년만에 4조원 적자에서 13조5천억원 흑자로 돌아섰고 7.0%에 불과하던 BIS비율은 지난해말 12.8%까지 올라왔다.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2.7%에서 0.8%로 낮아졌다.

국내총생산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9%에서 2006년 7.5%로 상승했다. 올 3.4분기만 따지면 국내총생산(GDP)는 작년동기 대비 5.2% 성장했는데 비해 금융.보험업 생산액은 13.9% 늘었다. 금융산업이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된 셈이다.

◇ 근본적 위기 관리 능력 '글쎄'

그러나 기본 실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물으면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공적자금이라는 링거주사를 맞고 혈색만 좋아졌지 여전히 천수답식 경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각 은행이 개별적으로 전략을 만들어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으로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시장 불안만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2001~2002년 카드대란, 2005~2006년 주택담보대출 급증 국면, 2006~2007년 상반기 중소기업대출 급속 증가 현상 등은 대표적인 `벌떼식 경영'의 증거물이다.

이런 몰려다니기 식 경영은 특정 분야에 과잉 여신을 만들고 자산 가격 버블을 형성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과도한 외형경쟁은 장기적으로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해치고 금융시스템 상의 자원배분을 왜곡해 심각한 유동성 리스크를 만들 수 있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은행들은 신시장 개척보다는 손 쉬운 대출한도 확대나 금리 인하 등 제로섬 경쟁을 선호해왔다. 즉 각 은행이 개별화된 전략을 토대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보다 그때 그때 손쉬운 돈벌이로 몰려다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안방 호랑이' 불과

은행 산업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의 자산은 1천808억달러로 세계 1위인 바클레이즈의 1조5천915억달러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 자산 상위 4개 은행의 총자산은 미국 상위 4개사의 13% 수준이다.

은행의 수익 중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13%로 영국의 46%, 미국의 45%, 독일의 27%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즉 예금과 대출을 통한 이자마진 외에 이렇다할 수익이 없다는 의미다.

또 해외점포가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 수준에 불과해 `안방 호랑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외 유수은행인 UBS나 도이체방크의 경우 총자산 중 해외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1%, 79%에 달한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외환 위기 이후 은행 업계가 완전한 체질 개선을 이루기 위해선 과학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외 시장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