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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후는 9

changebuilder 2006. 12. 11. 20:19
기사 입력시간 : 2006-12-08 오전 4:45:39
은퇴 5년만 늦춰도 노후자금 부담 40% 줄어
커플매니저로 활동 중인 최용주씨(71)가 6일 서울 도봉시니어클럽 결혼정보센터에서 동료와 주간 기획회의를 하고 있다. 최씨는 “노인들이 연륜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나이 60에 일을 할 순 없고…."

내년이면 쉰 살이 되는 회사원 최규원씨는 10년 후면 일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10년 내에 노후 자금을 마련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대학만 들어가면 끝이려니 했는데 올해 대학생이 된 자녀의 등록금과 학원비 등으로 연간 1000만원이 들어간다. 그는 "퇴직 후에 집을 팔아 조금 더 싼 곳으로 옮겨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씨의 노후 계획에 중요한 한가지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일이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부연구위원은 "퇴직 후 모아둔 돈으로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확실한 노후 준비는 일"이라며 "은퇴 시기를 5년만 늦춰도 40세 근로자의 노후 자금 부담이 40% 줄어든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 '일하는 노인'은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지난해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937만 명에 이른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고령자의 경험을 썩히는 것이 사회적 낭비라고 여긴다.

◆ '무 베듯 은퇴'는 금물=호주 시드니 근교에 사는 테리 버틀러(54)는 교회 행정 일을 하다 3년 전 마사지사로 직업을 바꿨다. 늙어서도 시간을 조절해가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2003년 전문대학에 다시 들어가 자격증을 땄고, 영양학.스포츠의학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매일 일을 하지만 조금씩 근무 시간을 줄여갈 것"이라며 "20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는 65세 정년을 법으로 보장한다. 그러나 퇴직이 곧 일의 중단은 아니다. 주 5일 일하던 것을 2~3일 일하는 것으로 바꿀 뿐이다.

28년간 공무원을 하다 6년 전 퇴직한 홍콩인 왕 데이비드(66)는 부인과 함께 한.중.일을 중개하는 무역업을 하고 있다. 일감이 있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는 식이다. 그는 "공무원 연금을 받기 때문에 생활이 쪼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일상 생활에도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65세 이상 남성 취업자의 40%는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다.

◆ 은퇴 후 일, 준비 없이는 안 된다=3년 전 광고회사를 퇴직한 마쓰모토 시케아키(松本成明.62)는 해외에서 광고 게재권을 사서 일본 기업에 파는 일을 하고 있다. 1000만 엔으로 창업했다. 사무실 없이 집에서 인터넷과 팩스로 일한다. 그는 카피라이터로 광고회사에 취직했으나 해외 마케팅으로 업무가 바뀌었다. 그는 "해외 마케팅을 하면서 꾸준히 인맥을 관리하고, 나만의 영업 방법을 개발해 둔 것이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기업이 나서서 직원의 노후 재취업을 돕는다. 일본 최대 가스회사인 도쿄가스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세컨드 라이프 코스'를 운영한다. 50세가 되면 60세 이후의 근무형태를 선택하게 하고 노후 준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니시오 아키라(西尾明) 인사기획실장은 "직원 평균 연령이 45세"라며 "30~40년간 교육과 투자를 한 인력을 안 쓴다면 오히려 회사가 손해"라고 말했다. 일본 후생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76%는 근로자가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거나 재고용하는 제도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일자리가 거저 생기지는 않는다.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어서 청.장년 노동력이 부족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시민단체인 '일하고 싶은 모두의 네트워크'의 도요타 노부오(豊田信雄.66) 소장은 "구직자들은 80~90%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은 일을 찾지만 일자리의 30~40%는 청소나 아파트 관리"라며 "자격증이나 미리 해당 분야의 교육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일 할 의향은 있는데 준비는 하지 않는다. 통계청이 지난 5월 55~79세 8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8%가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50~64세 인구의 직업 훈련 참가율은 9.6%에 불과했다.



◆ 돈과 함께 보람을 번다=미국과 일본에선 노인들이 비영리기구(NPO)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NPO는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단체다. 증권사를 대신해 투자 교육을 한다거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 임대 사업을 하는 식이다.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 등의 투자를 받아 후진국 풍토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NPO 제약업체도 있다. 미국의 경우 200만 개에 이르는 NPO에서 일하는 인력이 전체 노동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일본에서도 1998년 관련법이 제정되면서 NPO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증권사 퇴직자들의 모임인 '투자와 학습 보급을 추진하는 모임'도 그중 하나다. 이곳에선 150명의 증권사 퇴직자들이 중.고생, 직장인 등을 위한 주식 투자 교육을 한다. 설립 첫회인 2002년 191건이었던 강의 건수는 지난해 3340건으로 늘어났다.

아리사와 노부유키(在澤伸介.60)는"퇴근 후 투자 강의를 들으며 눈빛을 반짝이는 직장인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강사료는 직장 다닐 때의 10% 수준이지만 평생 증권사에서 일한 경험을 썩히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창규.최준호.고란(이상 경제부문).김영훈(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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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